손자병법

제9계 격안관하隔岸觀火

한림정(신방현) 2018. 6. 25. 13:47

격안관하隔岸觀火 강건너 불구경하다

 




 

격안관화(隔岸觀火)

상대방에 내분이 일어나면 관망하라.

'강건너 불난것을 바라본다.'는 뜻으로

소극적으로 넋을 놓고 강건너 불구경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정황을 잘 살피면서 주시하여 때를 기다리는 적극적인 기다림을 말함.

 

隔: 사이 뜰 격

岸: 언덕 안

觀: 볼 관

火: 불 화

 

’기슭을 사이에 두고 불을 쳐다본다.’

여기서 불이란 내분을 의미한다. 즉 집안싸움을 일으키라는 말이다.

내분상태에 있는 상대를 기습하면 오히려 적이 단결하게 되어 거꾸로 아군이 손해를 보게 된다. 그러므로 어느 정도 시간을 가지고 적의 자멸을 기다리는 것이 좋다. ’행운은 자면서 기다려라’는 속담이 있다. 이 또한 ’격안관화’의 책략이다

 

 

第九計 隔岸觀火

陽乖序亂,陰以待逆,暴戾咨睢,

其勢自斃。順以動豫,豫順以動。

譯:敵人內部分裂,秩序混亂,我便等待他發生暴亂,

那時敵人窮兇極惡,翻目仇殺,勢必自行滅亡。

我要根據敵人變動作好準備;作好準備之後,

還要根據敵人的變動而行動。

 

Watch the fires burning across the river

(隔岸觀火/隔岸观火, Gé àn guān huǒ)

Delay entering the field of battle until all the other players have become exhausted fighting amongst themselves. Then go in at full strength and pick up the pieces.

 

 

(적전계 - 적을 철저히 기만하라)

9 격안관화(隔岸觀火) - 강 건너 불구경하며 기다려라

 

隔岸觀火 陽乖序亂, 陰以待逆. 暴戾恣睢, 其勢自斃. 順以動豫, 豫順以動.

 

강 건너 불난 것을 구경한다는 뜻으로 적의 내부에 분란이 일어났을 때 지켜보다가 적이 자멸하면 어부지리를 취하는 계책이다. 적이 내분으로 지리멸렬해지면 아군은 조용히 적의 내부에서 더 큰 변란이 일어나기를 기다린다. 극도로 포학해져 서로 원수처럼 눈을 부릅뜨며 죽이게 되면 사세상 반드시 스스로 멸망하게 된다. 아군은 공순한 태도를 보이며 불필요하게 적을 핍박하지 않고, 적의 내분이 극으로 치달아 스스로 궤멸할 때 기회를 보아 이익을 취한다. 이는 “만물이 천지자연의 이치에 순종하면서 움직인다”는 뜻을 지닌 〈예괘(豫卦)〉의 ‘순이동예(順以動豫), 예순이동(豫順以動)’ 단사와 취지를 같이한다.

 

[해설]

 

‘양괴서란(陽乖序亂), 음이대역(陰以待逆)’의 음양은 적과 아군의 세력을 말한다. 괴(乖)는 내부적으로 어그러져 있는 모습을 뜻한다. 폭려자수(暴戾恣睢)가 그것이다. ‘폭려’는 갑자기 어그러졌다는 뜻으로 곧 흉포한 모습을 상징한다. ‘자수’는 멋대로 눈을 부릅뜨며 전횡한다는 뜻이다. 거리낌 없는 방자한 모습을 형용한 것이다. 그 결과는 자폐다. 자멸과 같은 의미다. 격안관화 계책은 적의 내부 분란을 이용해 어부지리를 취하는 것이 요지다. 격안관화는 당나라 때 승려 건강(乾康)이 쓴 〈투갈제기(投渴濟己)〉의 구절에서 나온 것이다.

 

 

강 건너 불구경하느라 불길처럼 바쁘고 [隔岸紅塵忙似火]

산 넘어 푸른 봉우리는 얼음처럼 차갑다 [當軒靑嶂冷如氷]

 

격안관화는 강 건너 적이 주둔한 쪽에 불이 나는 것을 바라다가 적이 자멸하면 그때 이익을 고스란히 취하는 것을 말한다. 《손자병법》 〈군쟁〉의 ‘이치대적(以治待敵), 이정대화(以靜待嘩)’의 취지와 통한다. 잘 정비된 아군으로 혼란스러운 적을 상대하고, 침착하고 차분한 아군으로 떠들썩하고 무질서한 적을 상대한다는 뜻이다. 앉아서 호랑이가 싸우는 것을 구경한다는 뜻의 ‘좌산관호투(坐山觀虎鬪)’와 통한다. 적이 내분을 겪을 때 성급히 일을 도모하면 오히려 실패할 수 있다. 적이 서로 단합해 대항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는 팔짱을 끼고 강 건너 불구경하듯이 적이 자멸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옳은 방법이다. 어부지리 내지 방휼지쟁(蚌鷸之爭)의 고사와 상통한다.

 

대표적인 예로 조조가 원소의 자식들을 격파할 때의 일화를 들 수 있다. 원소가 관도대전 패배의 수치를 참지 못해 분사(憤死)할 당시 자식들이 후계자 자리를 놓고 치열하게 다투었다. 조조는 이를 이용해 원씨 형제들을 차례로 제거했다. 원상(袁尙)과 원희(袁熙) 형제가 오환족에게 몸을 의탁하자 조조가 진군해 오환을 깨뜨렸다. 원씨 형제가 이번에는 요동태수 공손강(公孫康)에게 달아났다. 장수들이 하나같이 여세를 몰아 요동을 평정하고 원씨 형제를 포획해야 한다고 진언했다. 조조가 크게 웃으며 말했다.

 

“그대들은 전혀 움직일 필요가 없다. 공손강이 제 손으로 원씨 형제의 목을 들고 찾아올 것이다!”

 

그러고는 이내 허도로 회군했다. 공손강은 원씨 형제가 투항해왔다는 소식을 듣고는 크게 의심했다. 원씨 부자는 일찍부터 요동을 차지하려 했다. 이들을 받아들이면 후환이 생길 우려가 있을 뿐만 아니라 조조의 미움까지 살 게 뻔했다. 조조의 회군은 요동을 칠 의사가 없다는 뜻을 표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원씨 형제를 받아들이는 것은 화를 자초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곧바로 이들의 수급을 베어 조조에게 보냈다. 조조는 웃으며 휘하 장수들에게 말했다.

 

“공손강은 늘 원씨가 요동을 병탄하지나 않을까 우려했다. 원씨 형제가 찾아오자 틀림없이 그런 의심이 들었을 것이다. 만약 우리가 조급히 군사를 동원했다면 그들은 오히려 힘을 합쳐 저항했을 것이다. 우리가 군사를 돌리면 그들은 서로 등을 돌려 싸우게 되어 있었다. 과연 내가 예측한 대로 일이 진행되었다!”

 

한 발 떨어져 사태를 냉정히 짚는 것이 관건이다.

 

[고전 속 정치이야기] 격안관화(隔岸觀火)

서상욱 역사 칼럼니스트 2012.12.06 천지일보

대선전에 뛰어들었다가 사퇴한 안철수의 생각은 무엇일까?

앞으로 그의 행보를 짐작할 수 있는 사례가 있다.

 

서진이 심각한 내분으로 멸망한 후 중국의 북방에서는 ‘5호 16국 시대’라는 혼란이 오랫동안 계속되었다. 이 시기에 요장(姚萇)은 지금의 섬서, 감숙, 영하, 산서 일부를 포함한 광대한 지역에서 강(羌)족의 후진(後秦)을 수립했다. 요장은 한족 지주들을 임용하고 부정부패와 가혹한 통치제도를 철폐했으며, 형벌을 정비하고 근검과 절제를 제창했다. 또한 학교를 세우고 충직한 사람들의 간언을 받아들였으며, 문치를 중시하고 덕정을 베풀어 인심을 얻었다. 전진(前秦) 이래 혼란에 빠졌던 관중은 활력을 되찾았다. 요장은 명성도 실력도 그리 자랑할 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군웅들이 난립하던 시기에 한쪽 지방에서라도 정권을 수립할 수 있었던 것은 군사력뿐만 아니라 상당한 수준의 정치적 모략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 하나가 ‘강 건너 불보기(隔岸觀火)’를 이용하여 얻은 승리였다.

 

요장은 선비족인 전진의 부견(符堅)이 가업을 일으킬 때 뛰어난 무공을 세워 양위(揚威) 장군이 되었다. AD 383년 부견이 동진을 공격하기로 결심하자 부융(符融)을 비롯한 조정의 실력자들이 모두 반대했지만, 선비족 모용수(慕容垂)와 연합한 요장은 이 기회를 이용하여 자립할 생각으로 장강을 건너 오월 지역을 병탄하라고 적극적으로 권유했다. 군사력을 믿고 있던 부견은 반대를 물리치고 원정군을 일으켰지만 비수에서 사현(謝玄)이 이끄는 동진군에게 대패했다. 전진의 주력부대는 궤멸했지만 모용수와 요장의 부대는 온전히 살아남았다. 모용수는 부견을 낙양까지 호위하는 도중에 반란군과 연합하여 형양(滎陽)에서 자립을 선언하고 연(燕)을 세웠다. AD 384년, 모용수는 20만의 병력으로 업을 공격했으나 동진군과 연합한 부견의 아들 부비(符丕)의 공격을 받자 포위를 풀고 북쪽으로 후퇴했다. 모용홍(慕容泓)은 패전 소식을 듣고 지금의 섬서성 화음현(華陰縣)으로 이동했다. 모용홍이 부하에게 피살되자 모용충(慕容沖)은 전진을 잇달아 격파하고 장안의 서북쪽 아방성(阿房城)에서 서연(西燕)을 세웠다.

 

이 무렵 부견은 요장과 아들 부예(符叡)에게 모용홍을 토벌하라고 명했다. 부예가 모용홍에게 피살되자 죄가 두려웠던 요장은 위북(渭北)으로 도주하여 자립했다. 요장이 자립했을 때 모용충은 전진의 두충(竇沖)을 격파하고 모용홍과 합쳤다. 그가 모용홍의 암살에 개입했다는 설도 있다. 모용충은 황태제의 자격으로 모용황을 황제로 추대하고 백관을 설치했다. 당시에 전진은 요장을 집중 공격하고 있었다. 전진과 소모전을 전개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요장은 모용충과 연합하고 조용히 정세의 변화를 관망하기로 결정했다. 아들 요숭(姚崇)을 인질로 제공한 그는 북지로 이동하여 군사력을 비축했다.

 

예상보다 빨리 결과가 나타났다. 모용충이 장안을 공격한다는 소식을 들은 부견은 포위를 풀고 회군했다. 요장은 전진과 모용충이 싸우는 동안 새로운 곳을 확보했다가 두 세력이 모두 심각한 피해를 입으면 다시 장안을 도모하기로 결정했다. 그의 전략은 잇달아 성공했다. 그동안 장안성을 중심으로 치열한 공방전을 펼치던 전진과 모용충은 모두 엄청난 손실을 입었다. 385년 5월, 모용충이 다시 장안을 공격하자 친히 독전하던 부견은 화살에 맞아 중상을 입고 도피했다. 그물을 치고 기다리던 요숭은 부견을 사로잡아 선양을 강요하다가 거절하자 살해했다. 모용충은 가볍게 장안을 점령했지만, 전진의 관리들은 대부분 요장에게 투항했다. 장안을 점령한 선비족은 요장의 예상대로 내분이 발생하여 서로 싸우다가 동쪽으로 이동했다. 요장은 힘들이지 않고 장안을 점령했다.

 

요장으로부터 안철수의 다음 행보를 짐작한다면 무리일까? 5년 후의 그가 궁금하다.

 

 

격안관화(隔岸觀火)와 야당내분

경북일보 삼촌설 2014-10-08

 

조조에 대패한 원소는 울화병으로 죽었다. 죽기직전 원소는 막내아들 원상을 자신의 뒤를 이어 대사마장군에 임명했다. 기세가 등등해진 조조는 원소의 아들들을 토벌하여 단숨에 하북을 평정하려 했다. 조조군은 네 갈래로 나누어 원상, 원담, 원희 등 원소 아들들이 지키는 성을 공격했으나 쉽게 함락되지 않았다.

 

이 때 조조 휘하의 모사 곽가가 한 가지 계책을 올렸다. "원소는 큰아들이 아닌 막내를 자기 뒤를 잇게 했기 때문에 형제들이 각자 권력을 나누어 가진 채 패거리를 모으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서두르시면 오히려 그들이 힘을 합칠 것이지만 느긋하게 관망하시면 조만간 권력투쟁을 위해 서로 싸우게 될 것입니다. 차라리 군대를 형주 쪽으로 돌려 유표를 치면서 원씨 형제 사이에 모종의 변화가 발생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단숨에 평정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조조가 곽가의 계획에 따라 철군하자 마자 맏아들 원담은 원상의 계승권을 빼앗기 위해 칼을 뽑아들었다. 골육상잔의 내부 모순이 터졌던 것이다. 원상에게 밀린 원담은 조조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조조는 드디어 때가 왔다고 판단, 곧장 군대를 이끌고 가 원담을 죽이고 원상과 원희를 물리쳐 순식간에 화북을 손아귀에 넣었다.

 

조조는 곽가의 '격안관화(隔岸觀火; 강 건너 불구경)의 전략으로 화북을 손쉽게 차지했다. 그 후 요동으로 도망친 원희와 원상마저 '격안관화'의 전법에 의해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적의 내부 모순이 격화돼 혼란이 생겨 그 모순이 폭발하기를 기다리는 '격안관화'의 계책을 시행할 땐 염두에 둬야 할 것이 있다. 적이 내부에서 서로 등을 돌리고 으르릉대 자멸할 때까지 섣불리 달려들지 말아야 한다. 잘못했다가는 적으로 하여금 일치단결해서 맞서게 하는 역효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일부러 한발 물러서 불구경만 하는 것이 '불난 집에 부채질'이 될 수도 있다. 내부의 권력투쟁으로 국회를 내동댕이쳤던 야당에 대한 박대통령의 질타는 당연한 발언이었다. 하지만 때로는 두고 보는 '격안관화'고 좋은 전술이다.

 

소설 삼십육계-격안관화(隔岸觀火)

 

싸우다 불리하면 도망가는 방법쯤으로 알고있는 삼십육계가 사실은 병법의 대가들이 실전에 응용하는 훌륭한 전술이라는 주장이 담긴 소설 36계중 9편인 격안관화(隔岸觀火)는 제목 그대로 강건너 불구경이다.

 

상대방에 내분이 일어나면 일단 강 건너 불보듯 구경하면서 상황을 살피고 기회가 왔다 싶으면 그때 움직여도 늦지 않다는 의미디. 소설의 주 무대는 송나라가 막 건국된 조광윤의 시대와 그의 뒤를 이은 조광의의 시대다.

 

조광윤은 후주의 절도사로 있다가 선양의 형식을 빌어 송왕조를 개창한다. 동료 절도사들의 지지가 있긴 했지만 역시 건국에는 권모술수가 따를수 밖에 없다. 그렇게 해서 창업을 하긴 했지만 송 태조는 동생인 조광의에게 독살 당한다. 태조가 순조롭게 정권을 다지고 죽게되면 자신에게 차례가 오지않을것을 걱정한 동생 광의가 형을 죽이고 권좌에 오른것이다.

 

비겁한 방법으로 왕위에 오른 광의는 대권을 잡긴 했지만 정권의 기반을 다지기엔 갈길이 멀다. 태조와 함께 고락을 함께하며 의형제를 맺은 10형제가 눈을 부릅뜨고 있는데다 고명대신들도 새로 황제가 된 광의를 의심의 눈초리로 지켜볼뿐 정권에 가담하길 꺼린다.

 

하지만 권력은 항상 새로운 세력을 만들어 내고 밀려나는 세력은 분열을 거듭하면서 스스로 몰락의 길을 걷는다. 광의는 태조의 고명대신과 함께 피를 뿌린 형제들이 갑작스런 권력상실에 떠밀려 분열해 가는 과정을 적절히 이용하고 자신의 정치적 모사인 송기의 지모에 의존하면서 분열하는 구세력들을 차례로 각개 격파해나간다.

 

그러면서 구세력중 갈팡질팡하는 일부를 자신의 세력권으로 끌어들여 태후의 유언을 위조한다. 황위계승의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해 북경지방을 중심으로 한 연운16주를 차지한 북방의 강자,거란족의 요나라를 침략하다 실패한 후의 일이다. 그가 바로 조보다. 태조때 재상을 지냈던 조보는 광의로 정권이 바뀐뒤 낙백의 세월을 보내다 재기를 위해 태후의 유명을 위조하고 그렇게 해 광의의 집권을 정당화하는데 일조한다.

 

그 덕으로 다시 재상의 반열에 오르지만 그러기도 잠깐. 결국 토끼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는 잡아먹히고 만다는 토사구팽의 현실을 뒤집을순 없다. 조보는 조그만 잘못으로 큰 벌을 받고 권력에서 밀려났다가 당시에 권력층을 조용히 살해하는데 쓰였던 笑藥에 중독돼 세상을 떠난다.

 

태조의 아들들을 포함해 일가친척등 숱한 인물의 희생을 딛고 정권을 장악했지만 조광의의 앞길도 순탄치만은 않다. 자신의 자식들이 죽고 자신 또한 불행하게 살다가 결국 권력을 셋째에게 넘긴다.

 

격안관화란 이런 혼란기에 어떻게 처세해야 하느냐를 보여준다. 이이제이의 묘수라고 할까 그런 느낌이 진하게 와 닿는 글이다. 그나저나 고민이다. 36권을 모두 읽기엔 책이 너무 많다.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지는 아직도 판단이 안선다.

 

격안관화(隔岸觀火)

"강건너 불난것을 바라본다."

http://blog.naver.com/saldabom?Redirect=Log&logNo=140118155186

1.의미:

적군에 내분이 일어났을 때는 조용히 그 국면이 악화되기를

기다렸다가 적당한 시기에 행동을 취하여 섬멸한다.

적정의 변화에 따라 기회를 봐서 일을 도모하는 전략이다.

 

2.배경:

타인이 위험한 상황에 처해 있을 때에

수수방관하면서 그가 망할 때를 기다리는 것을 말한다.

전쟁에서는 직접 교전하지않고 적군의 내분을 이용하여

분열을 더욱 가속시켜 승리를 얻어내는 전략이다.

 

춘추전국시대 한나라와 위나라는 서로 양립하여 해마다 전쟁이

그칠날이 없었다. 이에 진나라 혜왕은 계략을 모색하였으나

좋은 방법이 없었다. 그러다 마침 진진이 진나라에 오게 되자

 

즉시 불러서 어찌하면 좋을지 묻게 되었다. 진진이 답하기를

 

"옛날에 호랑이를 잘잡는 변장사라는 영웅이 있었는데 하루는 두마리 호랑이가

소를 한마리 잡아놓고 서로 먹으려고 다투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를 보고 변장사는 보검을 꺼내 호랑이를 죽이려 하였습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어린아이가 막으면서 "두 호랑이가 한마리 소를

서로 먹으러 하니 틀림없이 싸움을 할 것입니다. 싸움은 치열하게

될 것이고 나중에는 약한 호랑이는 물려 죽고 강한 호랑이도 상처를

입어 기력이 쇠잔해 질것입니다. 이때를 틈타면 상처난 호랑이를

아주 쉽게 죽일수 있게 되어 일거에 두마리의 호랑이를 얻게 됩니다."

 

라고 말하였습니다. "지금 위나라와 한나라는 장시간 싸움을 하고

있으니 강한 나라는 손해를 볼 것이고 약한 나라는 패망 할 것입니다.

그 때에 많은 손상을 입은 강한 나라를 공격하게 되면 쉽게 승리할

것입니다." 진나라 혜왕은 진진의 말에 따라 한나라가 망하고 위나라가

손상을 입은 틈을 타서 위나라를 공격하여 아주 쉽게 승리를 거두었다.

적 내부에 갈등이 발생하고 심화되면, 질서가 혼란해지고 폭등이 발생

하기를 기다린다. 적의 내부 모순이 격화되어 외부로 표면화 되면

이때가 바로 가장 적당한 시기이다. 이시기를 기다렸다가 행동으로

옮기면 아주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제 9 계 격안관화(隔岸觀火)

 

“격안관화”의 원래 뜻은 강의 이 편에서 강 건너 편에 불 난 것을 바라 본다는 것으로 남에게 위난이 발생했을 때 수수방관하다가 그가 자멸하게 되면 그 와중에 어부지리를 얻는 것을 비유한 것이다.

 

陽乖序亂, 陰以待逆 (양괴서란, 음이대역)

 

적의 내부 질서가 혼란스러워지면, 조용히 그 국면이 악화되기를 기다리는게 좋다. 적이 서로 잔인하게 죽이게 되면, 그 세력은 반드시 멸망하게 될 것을 알게 된다. 적의 정황에 순응해서 계획과 책략을 세우고 적정의 변화에 따라 기회를 봐서 일을 도모한다.

 

원 문

 

陽乖序亂, 陰以待逆. 暴戾恣睢, 其勢自斃 . 順以動豫, 豫順以動.(양괴서란, 음이대역. 폭려대휴, 기세자폐. 순이동예, 예순이동.)

번 역

 

적의 내부 모순이 심해지고 지리멸렬해 지면, 아군은 조용히 적의 상황이 악화될 때를 기다려야 한다. 때가 되어, 적이 포악해 지고 서로 원수처럼 죽이게 되면 반드시 스스로 망하게 된다. 아군은 순응하는 태도를 취하여(즉, 기다리거나 지켜 보아) 기회를 보아 일을 도모해 앉아서 어부지리를 얻는다. (역자 주: “순이동예, 예순이동”은 <주역>의 예(豫)괘에 나온다. 즉, 순응하는 태도를 취하고(다시 말하면, 기다리거나 지켜 보고) 적을 몰아 부치지 말며, 그 내부가 서로 죽이면 아군은 기회를 보아 이익을 취한다.)

 

해 설

 

이 계의 명칭은 <손자:군쟁편>의 “아군은 엄격하게 정리된 상태에서 혼란스러운 적을 상대하고, 아군은 침착하고 차분한 상태에서 떠들썩하고 무질서한 적을 대한다(以治待敵, 以靜待嘩(이치대적, 이정대화)"에서 비롯되었다.

 

“격안관화”의 원래 뜻은 강의 이 편에서 강 건너 편에 불 난 것을 바라 본다는 것으로 남에게 위난이 발생했을 때 수수방관하다가 그가 자멸하게 되면 그 와중에 어부지리를 얻는 것을 비유한 것이다.

 

“격안관화”는 “앉아서 호랑이가 싸우는 것을 구경하는 것(坐山觀虎鬪(좌산관호투)”이다. 적의 내부가 분열되어 모순이 격화되고, 상호 배척하게 되며 서로 양립할 수 없게 되었을 때는 너무 성급하게 일을 도모해서는 안 된다. 왜냐 하면, 잘못하면 그들이 잠시 적대 관계를 미루고 서로 연합해서 아군에게 먼저 대항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옳은 방법은 먼저 행동하지 말고 조용히 기다려, 그들이 서로 죽여 세력이 약해져서, 스스로 와해되도록 하는 것이다.

 

생활에서의 활용

 

<36계>와 군사-조조(曺操), 격안관화로 원(袁)씨 형제를 제거하다

 

적이 극도로 잔혹하고 서로 반목하는 기세가 특히 셀 때 만약 공격하면 적은 반드시 필사적으로 반격하게 된다. 오히려 지켜 보고 피하게 되면 그 내부는 반드시 스스로 혼란에 빠져 멸망하게 된다.

 

 

동한(東漢) 말년, 원소(袁紹)가 전쟁에 패하여 죽은 후, 아들들이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서로 다투게 되자 조조는 이 때를 틈 타 원씨 형제들을 제거했다. 원상(袁尙), 원희(袁熙) 형제가 오환(烏桓)에게 몸을 의탁해 달아 나자 조조는 오환에게 진군하여 오환을 패퇴시켰다. 그러자 원씨 형제는 이 번에는 요동태수 공손강(公孫康)에게로 투항했다. 조조의 제장들은 조조에게 다시 군세를 몰아 요동을 평정하고 원씨 형제를 붙잡자고 진언했다. 조조는 크게 웃으면서, “그대들은 움직일 필요도 없다. 공손강이 제 손으로 원씨 형제의 목을 들고 찾아 올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군에게 명령을 내려 허창(許昌)으로 회군하여 요동의 상황을 조용히 지켜 보았다.

 

공손강은 원씨 형제가 투항해 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마음 속으로 의심이 생겼다. 원씨 부자는 일찍이 요동을 차지하려는 야심이 있었던 바, 지금 원씨 형제는 싸움에 패하여 상가 집 개 신세가 되어 어느 곳에도 몸을 둘 곳이 없게 되자 부득이 요동으로 투항해 온 것이다. 공손강이 그들을 받아 들이면 반드시 후환이 있을 것이니, 다시 말하면, 그들을 받아 들이면 강력한 세력의 조조의 미움을 사게 될 것이 뻔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만약 조조가 요동을 공격하게 되면 원씨 형제를 받아 들여 함께 조조에 대항해야 했다. 그래서 그가 조조가 이미 허창으로 회군하여 요동 공격의 의사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자, 그들을 받아 들이는 것은 백해무익하다고 판단했다. 그는 복병을 준비해두고 그들을 불러 일거에 사로 잡아 수급을 베어 조조에게 보냈다. 조조는 웃으며 제장들에게 , “공손강은 늘 원씨가 자기를 병탄할 것을 겁냈기 때문에 원씨 형제가 찾아 오자 틀림없이 의심이 들었을 것이다. 만약 우리가 조급히 군사를 동원했다면 그들은 오히려 힘을 합해 함께 저항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군사를 돌리면 그들은 서로 분열되어 싸울 것이다. 결과를 보니 과연 내가 예측한 대로였다.”라고 말했다.

 

<36계>와 비즈니스-청바지의 탄생

 

경쟁에서 이기는 도리는 단순한 용기보다는 용의주도함에 있다. 여러 사람들이 동일한 이익을 위해 서로 경쟁할 때, 지혜로운 사람은 왕왕 한 쪽 편에서 조용히 그 변화를 지켜 보다가 좋은 기회를 차지한다. 양보해서 충돌을 피하는 것은 결코 남과 경쟁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고수는 항상 먼저 보고, 후에 생각하고 나서야 행동한다.

 

오늘 날 젊은이가 청바지를 입고 거리를 지나 간다고 해도 아무도 특이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사실 청바지의 탄생은 “청바지 왕”르바이 스트라우스의 “격안관화”의 결과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100여 년 전, 미국 캘리포니아 주는 금광이 발견되고 그에 따른 금 채굴열풍이 달아 올라 금을 캐겠다고 오는 사람들이 물밀듯이 밀려 들었다.

 

금을 캐겠다는 사람들이 날로 늘어 남에 따라 경쟁도 치열해 졌고, 광맥을 두고 각축을 벌리는 것 뿐 아니라, 질 좋고 편리한 금광용 도구와 생활용품에 대한 수요도 굉장했다.

 

독일 출신의 유태인 르바이 스트라우스도 이런 거대한 경쟁 시장에 도착하였으나, 그는 금을 캐기 위한 경쟁에 뛰어 들지 않고 눈 앞에서 벌어지는 천변만화의 상황을 냉정하게 관찰하였다. 르바이는 조용히 기다렸다. 그는 그가 찾고자 하는 기회가 곧 다가올 것으로 굳게 믿었다.

 

마침내 그 기회가 찾아 왔다.

 

어느 날, 르바이는 피로에 지친 광부 한 사람과 같이 휴식을 취하고 있었는데, 그 광부가 푸념하기를, “에이, 우리 같은 인생 하루 종일 땅만 파야 하니! 그러면서 먹는 거나 잠 자는 거나 늘 남에게 뒤쳐질까 봐 안달을 하는 신세지. 바지가 찢어져도 수선할 틈도 없다니까. 그리고 이 광산은 정말 이상한 곳이야. 바지가 정말 빨리 닳는다니까. 새로 산 바지가 며칠 못 가 그만 버려야 한다고,,,”

 

“그래? 만약에 마모에 잘 견디고 질긴 바지가 있다면,,,” 르바이는 말하다 말고 그만 멈추었다. 범포(帆布)야 말로 가장 마모에 잘 견디는 옷감이 아닌가? 그래! 그거야! 그는 그 광부의 손을 잡아 끌고 부리나케 같이 나갔다.

 

르바이는 광부를 데리고 잘 아는 재봉점으로 가서 재봉사에게, “범포로 금광 내에서 편리하게 입을 수 있는 바지를 만들려 하는데 가능할까요?”라고 물었다.

 

“물론이지요. 가장 좋기는 허리 춤을 낮게 하고 몸에 달라 붙게 하면 일하기에 편리하지요. 그리고 보기에도 멋지고 말끔하지요.”라고 재봉사가 대답하는 것이었다.

 

“좋습니다. 좋으실 대로 하시고요, 다만 튼튼해야 합니다.”

 

이리하여, 첫 번째 청바지의 전신인 작업복 바지가 이렇게 탄생하였다. 그 바지는 보기에 멋지고, 편리하며, 질겨서 광부들이 무척 좋아했다.

 

여기에서 출발하여, 르바이는 작업복 바지의 품질을 부단히 개선하고 높여서 점점 일종의 새로운 유행품인 청바지로 발전시켜 캘리포니아 금광에서 뿐 아니라 도시로 진출하고, 또 미국에서 전세계로 퍼져 나가게 되었다. 이리하여 르바이는 전 세계에 이름을 날리는 “청바지 왕”이 되었던 것이다.

 

<36계>와 처세-록펠러의 “이정제동(以靜制動)” 책략

 

사람들이 체면을 잃을 경우에도 “격안관화”, 또는 “이정제동”의 책략을 쓸 수 있다. 어떤 사람이 마구잡이로 당신의 체면을 깎으려 할 때, 아예 상대도 하지 않으면서 그로 하여금 실컷 떠들게 놔두면, 당신의 평정심이 그의 경거망동을 극복할 수 있게 된다. (역자 주: “이정제동”은 “정”, 곧 조용히 있음으로써, “동”, 곧 경거망동하는 것을 제압한다는 뜻임.)

 

미국의 석유 왕 록펠러가 젊었을 때 겪었던 일이다. 어느 날, 그가 사무실에 있을 때, 갑자기 한 남자가 노기충천해서 들어 오더니 다짜고짜 그의 책상 앞으로 다가 와 온 힘을 다 해 책상을 내리 치면서 큰 소리로, “록펠러 씨, 한 마디 물읍시다. 왜 나를 마음대로 해고했습니까? 오늘 제대로 설명 못하면 오늘 이 자리에서 죽고 말 겁니다.”

 

그 남자의 큰 고함소리는 록펠러의 사무실 주변에서 일하는 직원들 귀에 다 들렸다. 모두들 록펠러가 화가 머리 끝까지 나리라 생각했는데, 예상과는 달리 록펠러는 미소를 띤 체 그 남자를 바라 보면서 인내심을 갖고 그 남자가 하는 말을 들어 주는 것이었다.

 

그 남자는 록펠러의 회사에 오랫동안 일했던 사람이라 자기 상사의 성질을 잘 알고 있었다. 오늘 온 것은 상사로 하여금 화를 내게 만들어서 그와 함께 한 판 떠들어 마음 속의 화를 분풀이 하려는 의도였다. 그런데 록펠러의 표정을 보고서는 이상해서, 자기의 화를 억누르고 조용히 록펠러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러나 록펠러는 계속해서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 남자가 또 한번 책상을 내리치자, 록펠러는 아예 팔짱을 끼고는 얼굴을 돌려 창 밖을 내다 보았다. 조금 지나자, 펜을 들고는 아무 상관없다는 듯이 일을 계속하였다. 그 남자는 신통치 않다고 생각해 화를 내며 나가 버렸다.

 

록펠러가 그 남자에게 크게 화를 내지 않음으로써, 그 남자는 신통치 않다고 생각해 떠나 가도록 만들었던 것이다.

 

만약 록펠러가 그에게 설명을 해 주었다면, 아마도 더 골치 아픈 일이 발생했을 것이다. 만약에 사람들을 불러 들여 그를 쫓아 냈다면 그 남자는 앙심을 품고 나중에 다시 찾아 올 것이다. “이정제동”의 전술을 채용함으로써 그 남자로 하여금 스스로 맥이 빠져 떠나 가게 했을 뿐 아니라 자기의 높은 인격 수양을 나타내 보였으니 실로 현명한 계책이라 아니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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