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성계(空城計)
아군이 열세일 때 방어하지 않는 것처럼 꾸며 적을 혼란에 빠뜨리는 전략.
空 : 빌 공
城 : 성 성
計 : 꾀 계
36계(計) 가운데 제32계이다. 빈 성으로 적을 유인해 혼란에 빠뜨리는 계책을 말한다. 실력이 없으면서도 허세를 부리는 허장성세(虛張聲勢)와 통한다.
《삼국지(三國志)》 《촉서(蜀書)》 〈제갈량전(諸葛亮傳)〉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제갈량이 촉나라 군대를 양평관에 주둔시키고, 대장군 위연(魏延)과 왕평(王平) 등으로 하여금 위(魏)나라 군대를 공격하게 할 때의 일이다. 군대를 모두 다른 곳으로 보냈기 때문에 제갈량이 주둔하고 있는 성에는 병들고 약한 일부의 병사들만 남아 있었다.
이때 위의 대도독 사마의(司馬懿)가 15만 명의 대군을 이끌고 성으로 쳐들어 왔다. 이 소식을 들은 제갈량은 군사들로 하여금 성 안의 길목을 지키게 하고, 성문을 활짝 열어둔 채 20여 명의 군사를 백성들로 꾸며 청소를 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자신은 성 밖에서 눈에 잘 띄는 적루(敵樓)의 난간에 기대앉아 웃음 띤 얼굴로 한가롭게 거문고를 뜯었다.
대군이 몰려와도 아무 일 없는 듯 청소를 하고 있는 백성들과 거문고를 뜯고 있는 제갈량을 본 사마의는 제갈량이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지 몰라 군사를 거두고 물러가 버렸다.
《삼국지연의》에도 이와 같은 내용이 나온다. 제갈량이 거문고를 뜯어 사마의를 물리쳤다는 탄금주적(彈琴走敵)과 뜻이 같다. 거문고를 울려 적을 쫓아냈다는 뜻이다.
성을 비우는 책략
삼국지를 보면 제갈공명이 ’공성계’를 이용하여 사마중달의 대군을 퇴각시킨 장면이 나온다. 이 이야기를 잠깐 살펴보자. 중달의 대군이 공격해 왔을 때 공명은 성문을 모두 열어 놓고 자신은 도사 차림으로 누각에 올라 한가롭게 거문고를 타면서 적군이 오기를 기다렸다. 이것을 본 중달은 ’저 꾀많은 공명이 어딘가에 복병을 숨겨놓았을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해 서둘러 군사를 철수시켰다. 이렇게 일부러 무방비 상태인 양 보임으로써 적의 판단을 흐리게 하는 전략이 ’공성계’인데 29계인 ’수상개화’와는 반대 심리를 이용한다. 적에게 발각되면 돌이킬 수 없는, 그야말로 죽음을 무릅쓴 계책 중의 계책이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도 얼떨결에 그 술책에 넘어가게 된다
第三十二計 空城計
虛者虛之,疑中生疑;剛柔之際,奇而復奇。
譯:空虛的就讓它空虛,使人更加難以揣測;
在進攻和防禦中運用空虛的戰術來隱蔽自己的空虛,越發顯得用兵出奇。
The empty fort strategy[edit]
(空城計/空城计, Kōng chéng jì)
When the enemy is superior in numbers and your situation
is such that you expect to be overrun at any moment,
then drop all pretense of military preparedness,
act calmly and taunt the enemy,
so that the enemy will think you have a huge ambush hidden for them.
It works best by acting calm and at ease when your enemy expects you to be tense.
This ploy is only successful
if in most cases you do have a powerful hidden force
and only sparsely use the empty fort strategy.
(패전계) 32계 공성계(空城計) - 성문을 열어젖혀 의심을 자극하라
空城計 兵虛者虛之, 疑中生疑. 剛柔之際, 奇而復奇.
•
군사가 없는 빈 성의 문을 열어젖혀 적을 커다란 의혹에 빠뜨려 결국 퇴각하게 만드는 계책이다. 병력이 텅 비어 있을 때는 오히려 의도적으로 더욱 텅 비어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면 복병이 있을까 우려하는 적의 의심을 더욱 키울 수 있다. 이는 “어려움을 서서히 해결한다”는 뜻을 지닌 〈해괘(解卦)〉의 강유지제(剛柔之際) 효사와 취지를 같이한다. 참으로 기묘한 계책 가운데서도 더욱 기묘한 계책이라 할 수 있다.
[해설]
허자허지(虛者虛之)에서 앞에 나온 ‘허’는 공허한 것으로 적의 꽉 차 있는 ‘실’과 대적한다는 뜻이다. 뒤의 ‘허’는 더욱 허약하게 보인다는 뜻의 동사로 사용된 것이다. 상식을 뒤엎는 발상으로 적의 의심을 더욱 부채질하는 것이 관건이다. 의중생의(疑中生疑)가 바로 이를 지적한 것이다. 실을 더욱 실한 것처럼 부풀리는 허장성세를 역으로 구사해 허를 더욱 허한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절묘한 계책에 해당한다. 기묘한 계책 가운데서도 더욱 기묘하다고 언급한 기이복기(奇而復奇)가 그 증거다.
이는 〈해괘〉의 강유지제 괘사와 취지를 같이한다. 강유지제는 음유가 짐짓 양강과 교제하는 모습을 보여 상대방으로 하여금 덜컥 의심이 들도록 만든다는 뜻이다. 퇴각하는 적이 구사하는 매복계가 이에 해당한다. 매복은 짐짓 퇴각해 적을 유인할 때도 사용하지만 전세가 불리해 황급히 퇴각할 때도 사용한다. 추격하는 입장에서는 깊숙이 추격하는 것을 망설일 수밖에 없다. 공성계는 바로 이를 노린 것이다. 통상 허장성세로 적을 의혹에 빠뜨려 위기국면을 탈출하고자 할 때 사용하는 계책이다.
《삼국연의》에 제갈량의 가정전투를 다루고 있는 제95회의 무후탄금퇴중달(武侯彈琴退仲達) 대목에 공성계가 나오나 이는 허구다. 정사 《삼국지》를 보면 공성계를 구사한 사람은 촉나라 장수 조운(趙雲)과 위나라 장수 문빙(文聘) 두 사람뿐이다. 《춘추좌전》 〈노장공 28년〉조에 공성계를 최초로 구사한 사례가 나온다.
기원전 666년 초나라 영윤 자원(子元)은 초무왕의 아들로 초문왕의 동생이다. 그는 과부가 된 형수 문부인(文夫人)을 유혹할 생각을 품었다. 이에 문부인이 거처하는 궁전 옆에 관사를 짓고 요령을 흔들며 만무(萬舞)를 추게 했다. 문부인이 이 소식을 듣고 울면서 말했다.
“선군이 이 춤을 추게 한 것은 군사훈련을 하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지금 영윤은 원수에게 마음을 쓰지 않고 미망인 곁에서 그러한 짓을 하니 이 어찌 이상한 일이 아닌가?”
문부인의 시종이 이 말을 자원에게 고하자 자원이 이같이 탄식했다.
“여인도 원수를 잊지 않거늘 내가 도리어 그것을 잊고 있었다!”
이해 가을, 자원이 전차 600승을 이끌고 정나라로 쳐들어갔다. 그는 대부 투어강(鬪御疆), 투오(鬪梧) 등과 함께 깃발을 높이 세우고 앞에 섰다. 대부 투반(鬪班) 등이 후군이 되었다. 자원은 정나라의 원교(遠郊)에 있는 성문인 길질문(桔柣門)을 친 뒤 정나라 도성 외곽에 있는 순문(純門)을 거쳐 성곽 내에 있는 대로의 시장까지 이르게 되었다. 이때 내성에 있는 갑문(閘門)이 닫히지 않은 채 그 안에서 정나라 병사들이 초나라 말을 하면서 밖으로 나왔다. 이를 본 자원은 정나라가 공성계를 펴는 것을 알고 이같이 탄식했다.
“정나라에 인재가 있다!”
자원은 복병을 두려워한 나머지 이내 전진하지 못했다. 그 사이 중원의 제후들이 군사를 이끌고 정나라를 구원하러 왔다. 이 소식을 들은 초나라 군사가 야음을 틈타 달아났다. 이를 전혀 알 길이 없었던 정나라 사람들은 초나라 군사의 침공을 두려워한 나머지 지금의 하남성 부구현 서쪽인 동구(桐丘)로 달아나려 했다. 이때 문득 첩자가 달려와 이같이 고했다.
“초나라 군막 위에 까마귀들이 앉아 있다!”
정나라 도성의 백성이 달아나려는 생각을 거두었다.
후대에 나온 《열국지》는 제20회에서 정나라 대부 숙첨(叔詹)이 공성계를 낸 것으로 묘사해놓았다. 해당 대목이다.
“화평을 청하는 것과 결전을 벌이는 것 모두 좋은 계책이 아니다. 굳게 지키며 원군을 기다리는 계책이 취할 수 있는 방안이다. 정나라와 제나라는 서로 맹약을 맺은 바 있으니 금일 우리가 당하고 있는 어려움을 돕기 위해 제나라가 출병해서 서로 도울 것이다. 그러나 굳게 지키자고 말만 떠들어서는 버텨내기 어려울 것이다. 초나라 공자 원이 정나라를 치는 것은 사실 공을 세워 이름을 얻고자 하기 때문이다. 그는 필경 성공하고자 조급해 있음에 틀림없고, 실패를 크게 두려워할 것이다. 내게 초군을 물리칠 계책이 있다.”
그러고는 병사들을 매복시킨 뒤 성문을 열고 백성이 평시와 같이 자유롭게 오가게 했다. 마치 아무런 방비도 하지 않는 듯했다. 공자 원이 높은 곳으로 올라가 성안을 내려다보니 확실히 비어 있었지만 흐릿하게 갑옷을 입은 기마병의 모습이 보였다. 공자 원은 속임수가 있다고 보고 먼저 성안으로 사람을 보내 허실을 알아보게 했다. 이때 정나라의 구원 요청을 접한 제나라가 노나라 및 송나라 연합군을 이끌고 오게 되었다. 이 소식을 접한 공자 원이 이내 철군을 결정했다. 이는 역사적 사실에 부합하기는 하나 《춘추좌전》은 물론 《사기》와 《자치통감》에는 공성계를 낸 사람의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 풍몽룡의 창작으로 보인다.
공성계는 고도의 심리전술이다. 적장의 의구심을 부채질해 매복 작전에 걸려드는 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을 갖도록 만드는 것이 관건이다. 본문에 나오는 의중생의(疑中生疑)가 바로 이를 언급한 것이다. 이 계책은 리스크가 큰 까닭에 반드시 적장의 심리 등을 정확히 파악한 뒤 구사해야만 실효를 기할 수 있다.
제 32 계 공성계(空城計)
“공성계”는 일종의 심리전술이다. 아군이 성을 지킬 힘이 없는 정황에서 고의로 적에게 아군의 성안이 비워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니, 이가 바로 “공허할 때 더욱 공허하게 보이게 하는(虛者虛之 허자허지)” 계책이다.
*虛者虛之, 疑中生疑. (허자허지, 의중생의.)
“공성계”의 실질은 바로 자기의 진정한 실력과 움직이는 방향을 덮어 감춤으로써 상대를 미혹스럽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공성계”는 도박의 성질이 다분히 있으므로 매우 신중히 사용하여야 한다.
원 문
虛者虛之, 疑中生疑; 剛柔之際, 奇而復奇. (허자허지, 의중생의; 강유지제, 기이복기.)
번 역
만약 자기의 병력이 텅 비어 있는 상황이면, 고의로 더욱 더 아무 것도 없는 듯한 모습을 적에게 보여 주도록 한다. 이리 하여, 적으로 하여금 의심에 의심을 더하게 만든다. 적이 강하고 자기는 약한 상황 하에서 이러한 책략을 운용하면 신기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역자 주: 剛柔之際는 <주역: 해(解)> 괘에서 나왔다. 그 괘 “初六 (초륙)”의 괘사: “剛柔之際, 義無咎也 (강유지제, 의무구야).”즉, 강(剛)과 유(柔)가 서로 교차하면 재난과 화가 없다. 그러므로, 剛柔之際, 奇而復奇는 전쟁중에 허실을 결합하면 마치 <주역> 중에 나오는 바, 강유(剛柔)가 서로 돕는 것과 같이 기기묘묘한 효과를 나타 낼 수 있다는 뜻이다.)
해 설
이 계는 <손자병법: 허실편(虛實篇)>에도 나오고, <삼국지: 촉서(蜀書): 제갈량전>에도 나온다.
“공성계”는 일종의 심리전술이다. 아군이 성을 지킬 힘이 없는 정황에서 고의로 적에게 아군의 성안이 비워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니, 이가 바로 “공허할 때 더욱 공허하게 보이게 하는(虛者虛之 허자허지)” 계책이다. 적은 의심하게 되어 더욱 더 전진하는 것을 주저하게 되니 바로 “적으로 하여금 의심에 의심을 더하게(疑中生疑)”하는 것이다. 적은 성 안에 매복이 있을까 두려워하게 되고 따라서 매복 작전에 말려 들까 두려워하게 된다. 그러나 이 계책은 실로 매우 위험한 계책이다. 이 계를 사용할 때의 핵심은 상대 장수의 심리 상황과 성격의 특징에 대해 확실하게 파악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생활에서의 활용
<36계>와 군사-중국 역사상 최초의 “공성계”
“공성계”는 일종의 고급 심리 전술이다. 장수들은 아군의 군사력이 약하여 성을 지키기 어려울 때, 고의로 적에게 성안이 텅 빈 것을 보여 줌으로써, 상대로 하여금 의심을 하게 하여, 매복 작전에 걸려 드는 것을 두려워 하는 적이 스스로 물러 나겠끔 하는 것이다. 제갈량의 “공성계”는 천하가 다 아는 바이지만, 사실, 이미 춘추시대에 훌륭하게 사용된 전례가 있다.
BC 666 년, 초(楚)나라의 공자 원(元)은 병거 600 대를 이끌고 위풍당당하게 정(鄭)나라를 치러 떠났다. 초나라 대군은 연이어 몇 개 성을 무너뜨린 후 바로 정나라의 도읍을 압박하게 되었다. 정나라는 국력이 약했을 뿐 아니라 도성 안에는 병력도 얼마 없어 도저히 초나라 군을 막아 낼 방법이 없었다.
정나라의 위기가 코 앞에 걸리자 중신들의 의견도 분분하여, 누구는 항복하여 화평을 청하자고 주장하고, 누구는 죽기로 일전을 벌리자고 주장하는가 하면, 또 누구는 성을 지키며 원군을 기다리자고 주장했다. 이 주장들 중 어느 것도 정나라의 위기를 구해 낼 수 없었다. 상경 숙첨(叔詹)이 말했다: “화평을 청하자는 것과 결전을 벌리자는 것 모두 좋은 계책이 아니오. 굳게 지키며 원군을 기다리자는 계책이 취할 수 있는 방안이라 생각되오. 정나라와 제(齊)나라는 서로 맹약을 맺은 바 있으니, 금일 우리가 당하고 있는 어려움을 돕기 위해 제나라가 출병해서 서로 도울 것이오. 그러나 굳게 지키자고 말만 떠들어서는 버텨내기 어려울 것이오. 공자 원이
정나라를 치는 것은 실제에 있어서는 공을 세워 이름을 얻고자 하기 때문이오. 그는 필경 성공하고자 조급해 있음에 틀림없고, 실패를 크게 두려워할 것이오. 내게 초군을 물리 칠 한 가지 계책이 있소.”
정나라는 숙첨의 계책을 따라 준비를 진행하였다. 병사들은 모두 매복하도록 하여 적에게는 한 명도 보이지 않도록 하였다. 상점들은 평소와 같이 모두 문을 열도록 했고 백성들도 평시와 같이 오고 가도록 해 한 치의 혼란한 모습도 보이지 않도록 했다. 성문을 크게 열고 조교(弔橋)도 내려, 완전히 아무런 방비도 없는 듯 하였다.
초군의 선봉이 정나라 도성 아래 도착해 이러한 정경을 보자 마음 속에 의심이 들었다. 성안에 매복을 해 놓고 우리를 끌어 들이려는 것이 아닌가? 함부로 경거망동하지 말고 공자 원이 올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공자 원이 도착해 보니 역시 마찬 가지로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그가 제장들을 데리고 높은 고지에서 바라 보니 성안은 확실히 비워 있었지만, 흐릿하게 정나라의 갑옷을 입은 기병의 모습이 보였다. 공자 원은 여기에는 분명히 속임수가 있다고 판단해서, 함부로 진공하지 못하도록 하고, 먼저 성안으로 사람을 보내 허실을 파악할 때까지 군을 움직이지 않도록 했다.
이때, 제나라는 정나라의 구원을 요청하는 편지를 받게 되었고, 노(魯), 송(宋) 두 나라와 연합하여 군을 일으켜 정나라를 구하러 오게 되었다. 공자 원은 이 소식을 듣자, 삼국 연합군이 오게 되면 초군이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잘 알았으므로, 다행히 몇 차례 전투에서 승리한 것을 위안으로 삼은 채, 신속히 철군하기로 하였다. 그는 철군 시 정나라 군이 성을 나와 추격할까 두려워 전군에 명을 내려 밤을 도와 철군하였다.
<36계>와 비즈니스-“경영의 신” 마츠시다
비즈니스의 세계에서도 전쟁터와 마찬가지로, 대담하고 식견을 갖춘 기업가는 내외로 어려움이 닥쳤을 때에 남들과 다른 태도로 태연자약하게 대처한다.
마츠시다 회사는 마츠시다가 창업한 대형 전기 제품 왕국이다. 그러나, 마츠시다가 창업한 70 여 년의 역사 중에, 역시 여러 차례 생존 위기를 맞았었지만, 매 번 그 난관을 극복하여 위험한 상황을 안정시켰는데, 그 모두가 당연히 마츠시다의 계책에 따른 것이었다.
1950 년 대, 일본은 경제 대불황을 맞게 되었는데, 마츠시다를 포함해 많은 회사들이 견디기 어려워했다. 이 때문에 마츠시다 회사도 이사회를 열어 대책을 논의했다.
회의 상에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회사의 제품들이 팔리지 않아 직원들 월급도 주기 힘들게 되었으니 유일한 방법으로 직원들을 반으로 줄이자고 주장하였다. 이 소식이 퍼져 나가자 회사내 민심이 흉흉해 졌으며, 사실 대부분의 직원들은 이러한 때에 회사를 떠나도 다른 대책이 없었다.
일본 내 다른 대기업들도 비용을 줄이기 위해 모두들 직원들을 해고했으므로, 일순간에 사회에는 도처에 실업자 천지가 되었다. 적지 않은 노동조합들이 일을 잃게 되는 것이 겁나 파업을 조직하게 되었고 따라서 노사관계는 더욱 더 긴장하게 되었다.
마츠시다 회사와 거래를 하는 회사들도 마츠시다가 어떠한 움직임을 보이는지, 그리고 어떠한 방법으로 난관을 극복하는지를 예의 주시하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마츠시다 본인은 병이 나서 병원에 입원하고 있었다. 그래서 업계에는, 마츠시다가 이미 병으로 쓰러 졌다느니, 마츠시다 회사도 난관을 극복할 뾰족한 방법이 없다는 등, 여러 낭설이 떠 돌았다.
어느 날, 회사의 고급 경영자 다케히사(武久)와 이우에(井植) 두 사람이 병원으로 마츠시다를 방문하였다.
“회장님, 회사가 무척 어렵습니다. 이제 어떻게 해야 될 지 모르겠습니다.” 다케히사가 말했다.
마츠시다는, “정말 다른 방법이 없단 말이오?”라고 물었다.
이우에가 말했다: “회장님, 방법이 있기는 합니다. 바로 직원들을 반으로 줄이는 것입니다.”
마츠시다는 병상에 누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의 마음 속에는 이미 무슨 방법을 생각해 둔 것처럼 보였다.
“나는 이미 한 사람도 감원하지 않기로 결심했소.”
다케히사와 이우에는 이 말을 듣자 깜짝 놀랐다.
마츠시다는 그들의 속을 꿰뚫어 보듯이 말을 이었다: “만약에 우리가 감원하게 되면, 남들이 우리가 어려운 것을 알게 되고 따라서 이 때를 틈타 우리에게 받아 들이기 어려운 조건을 요구하게 될 것이오. 만약 우리가 감원을 하지 않으면, 우리가 실력이 있다는 것을 외부에 나타내게 될 것이고, 따라서 남들이 우리를 얕보지 못 할 것이며, 우리와 감히 경쟁할 생각을 못할 것이오.”
“회장님, 감원을 하지 않으면 당연히 제일 좋습니다. 하지만, 무슨 방법이 있습니까?”
“방법은 내가 이미 생각해 두었소. 매일 반 나절만 출근하고 월급은 옛 날처럼 하루치를 모두 주는 것이오.”
“그 방법은 안됩니다! 그리 하면 회사는 얼마 안가 빈 껍데기만 남게 될 것입니다!”
“하하,,,” 마츠시다는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그렇게 하시기 바랍니다. 너무 걱정들 하지 마세요. 절대로 당신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되지는 않을 겁니다!”
다케히사와 이우에는 반신반의하면서 돌아 갔다.
두 사람은 회사로 돌아 온 후 전체 직원들을 집합해서 모든 직위의 직원들에게 마츠시다의 결정이 전달되도록 했다. 직원들은 그 소식을 듣자 모두들 크게 기뻐하였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회사를 위해 전심전력을 다해 일할 것을 맹세하였고, 회사내에는 전원이 일심으로 단결하여 다 함께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자는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바깥 사람들이 마츠시다 회사가 한 명도 감원을 하지 않을 뿐 아니라, 반 나절 근무에 하루 치 급여를 지급한다는 소식을 듣게 되자, 마츠시다야 말로 일본 제일의 회사로서 부끄럽지 않다는 것과 반드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묘책이 있다고 믿게 되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 결정으로 회사 내 인심이 안정되어 각자가 최선을 다 해 일하게 되어 채 두 달이 지나지 않아 마츠시다 회사의 제품은 모두 다 팔려 나가게 되었다. 회사는 반 나절 근무제를 폐지했을 뿐 아니라 초과 근무를 해야 만이 밀려 드는 주문을 맞추어 낼 수 있게 되었다.
마츠시다는 실로 경영의 신으로 불려 마땅하였다. 위기가 닥쳐 회사가 무너지려하는 때에, 침착하게 비즈니스 상의 공성계를 대담하게 채택하였다. 어려울수록 그 어려움에 정면으로 도전하여 끝까지 도전하는 기개를 보임으로써, 사람들로 하여금 회사에 대해 전혀 의심하지 않도록 하면서, 내부적으로는 일심으로 협력하게 하였다. 이렇게 해서, 불리한 것이 유리한 것으로 바뀌고, 곳곳에서 전기가 마련되자 마침내 기회를 잡아 곤경을 벗어 나게 되었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마츠시다가 남들 보다 한 수 위의 계책을 쓴 결과였다.
<36계>와 처세-공용(孔鏞), 지혜로 산(山) 사람들을 물리치다
전쟁 터에서 “공성계”를 사용할 때에는, 반드시 태산이 눈 앞에서 무너져도 얼굴 색이 변하지 않을 정도로 양호한 심리상의 자질이 있어야 만 한다. 세상을 살아 가는 데, 형세가 아무리 열악하더라도, 반드시 태연자약하고 변화 속에서도 통제할 수 있도록 하며, 임기응변에 능하도록 해야 한다.
명(明) 효종(孝宗) 때, 공용이 전주(田州) 지부(知府)로 발령을 받았다. 임지에 온 지 삼 일 째 되는 날, 주의 군대가 다른 곳의 일 때문에 떠나 가고 성안이 텅 비게 되었다. 현지의 동족(峒族) 산민(山民)이 이 소식을 알고는 곧 바로 모여 창칼을 들고 전주성을 포위하였다.
모두들 놀라서 어찌할 바를 몰라 성문을 굳게 닫고는 며칠을 지키기로 결심하였다. 그러나 공용은 오히려 “성문을 열어라!”라고 명하였다. 어떤 이가 그에게, “지부 어르신, 동족 산민은 그야 말로 야인들이니 공성계 따위는 들어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라 성문을 열게 되면 그냥 쳐들어 올 것입니다.”라고 말렸다. 공용은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문을 열어라. 내 친히 성을 나가 그들과 담판을 할 것이다. 나는 황상의 은덕과 공맹(孔孟)의 도리로 그들을 일깨울 것이다.”라고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모두들 그 소리를 듣고는 고소를 금치 못하였다. 속으로는 이 세상 물정 모르는 지부 나으리 죽기로 작정하였다고 생각하였다.
성문이 열리자 공용은 몇 몇 수종을 데리고 말을 타고 성을 나왔다. 동족 수령이 고함을 질렀다: “네 놈이 어떤 놈이길래 말에서 내리지 않고 죽으러 왔느냐!” 공용은 진정하고 위엄을 잃지 않고 대답하였다: “나는 신임 지부다. 나는 지금 너희들 산채를 시찰하러 가는 길이니 어서 앞서서 길을 안내하거라.”
이전의 지부들은 동족의 생활의 어려움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았기에 한 번도 동족의 산채에 가 본적이 없었다. 동족 수령은 공용이 산채를 방문하겠다고 하자 매우 흔쾌히 받아 들였다.
산채에 도착하여 공용이 가운데 있는 자리에 앉자 말자 크게 호통을 쳤다: “네놈들은 예의도 모르느냐! 어서 무릎을 꿇지 못할까!” 그러자 수령도 지지 않고 말했다: “시시한 지부 따위가, 놀랍게도 우리한테 호령을 하고 영을 세우려 하다니!”공용은, “나는 너희들의 부모와 같은 지부 공용으로 너희들을 관할하고 가르칠 책임이 있다.” 그러자 그중 하나가 물었다: “그대는 성인 공자의 후손인가?” 공용이 대답했다: “내가 바로 성인 공자의 자손이다.” 그들은 이 말을 듣자, 공용에 대한 태도가 달라 졌다. 그러자 공용이 이어서 말했다: “나는 그대들이 본래 양민들이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단지 배가 고파서 성안에 들어 와 노략질 하는 줄도 잘 안다. 이제 부터는 내가 너희들의 부모와 같은 지부로써 양식과 피륙을 너희들에게도 나눠 주겠다. 만약에 너희들이 내 말을 듣지 않고 고집을 피우면, 즉시 관병을 보내 죄를 물을 것이다!”
동족이 떼를 지어 문제를 일으키는 이유는 바로 양식과 피륙을 빼앗아 오기 위해서 였는데, 오늘 지부 어른이 양식과 피륙을 무상으로 나눠 준다는 말을 듣고는, 모두들 마음을 다해 후회하며, 다시는 반란을 일으키지 않겠다고 다짐하였다. 동족 수령은 공용이 산채에서 하루 밤을 지내도록 하였다. 다음 날, 공용은 그들을 데리고 전주 성 아래로 와서, 성 위의 병사들에게 양식과 피륙을 던지도록 명하였다. 동족 산민들은 양식과 피륙을 어깨에 들쳐 메고는 아주 기뻐하며 산채로 돌아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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