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간계 反間計 적의 첩자를 역이용한다
三国演义 第33集 反间计
반간계(反間計)
'적의 첩자를 이용하여 적을 제압하는 계책'으로, 36계 가운데 하나이다. 적의 첩자를 포섭하여 아군의 첩자로 이용하거나 적의 첩자인 줄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며 거짓 정보를 흘려 적을 속이는 방법으로 활용된다. 적을 속이는 기만전술을 뜻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된다.
反:돌이킬 반
間:사이 간
計:꾀할 계
중국의 대표적 병법인 36계 가운데 33번째 계책이다. 간(間)은 적으로 하여금 서로 의심하여 믿지 못하도록 하는 의미이고, 반간은 아군을 이간하려는 적의 계략을 역이용하여 적을 이간한다는 의미이다. 적의 첩자를 역이용하여 적을 속이는 기만전술 가운데 으뜸으로 친다. 미인계·공성계·고육계(고육지책)·연환계와 함께 패전계(敗戰計)의 하나이다. 패전계는 패세에 몰린 싸움에서 기사회생하여 승리를 이끌어내는 계책이라는 뜻이다.
《손자》의 <용간(用間)〉편에서도 첩자를 이용하는 5가지 방법 가운데 하나로 반간을 들고 있다. 적의 첩자를 포섭하여 아군의 첩자로 이용하는 방법과 적의 첩자인 줄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며 거짓 정보를 흘려 적을 속이는 방법으로 활용된다.
《삼국지》의 적벽대전에서 주유가 펼친 반간계가 대표적인 예이다. 북방 출신인 조조의 군대는 기마전에는 능했지만 수전(水戰)에는 약하였다. 채모와 장윤은 조조에게 투항한 장수들로, 수전에 능하여 조조의 군대를 조련하였다. 주유가 내심 이를 걱정하고 있던 차에 조조의 참모로 주유와 동문수학한 장간이 항복을 권하러 주유를 찾아왔다. 주유는 그와 함께 술을 마시고 취하여 자는 척하면서 탁자 위에 채모와 장윤이 보낸 것처럼 꾸민 편지를 놓아두었다. 장간은 이 편지를 보았고, 또 주유가 다른 장수와 나누는 밀담에서 채모와 장윤에 대하여 말하는 것도 들었다. 장간은 편지를 훔쳐 빠져나와 조조에게 고하였다. 조조는 채모와 장윤을 오나라의 첩자로 오인하여 목을 베게 하였다. 이로써 조조의 군대는 수전의 약점을 보완하지 못하게 되었다. 결국 조조는 주유의 반간계에 넘어가 전력이 매우 우세하였음에도 대패하고 말았다
적의 첩자를 역이용하는 책략이다
이는 상대방 첩자에게 역정보를 흘려서 상대를 혼란케하는 수법인데, 여기에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첩자를 매수하거나, 아니면 눈치채지 못한 체하고 고의로 거짓정보를 흘리는 방법이다. 어느 방법을 선택하든지 힘들이지 않고는 승리를 거둘 수 없다.
第三十三計 反間計
疑中之疑,比之向內,不自失也。
譯:在疑陣中再布置壹層疑陣。
《易經•比》卦說:來自敵方內部的援助,自己不會受到損失。
Let the enemy's own spy sow discord in the enemy camp
(反間計/反间计, Fǎn jiàn jì)
Undermine your enemy's ability to fight by secretly causing discord between him and his friends, allies, advisors, family, commanders, soldiers, and population. While he is preoccupied settling internal disputes, his ability to attack or defend is compromised.
(패전계) 33계 반간계(反間計) - 적의 첩자를 회유한 뒤 역이용하라
反間計 疑中之疑, 比之自內, 不自失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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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의 첩보망을 역이용하는 계책이다. 아군의 내부에 적과 접선하고 있는 오열(五列)이 있을 때 이를 뛰어넘는 새로운 오열을 만든다. 적이 침투시킨 첩자를 회유해 아군을 위해 일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는 “안에서 군주와 친하게 지내며 자신의 역할을 잃지 않는다”는 뜻을 지닌 〈비괘(比卦)〉의 ‘비지자내(比之自內), 부자실(不自失)’ 효사와 취지를 같이한다.
[해설]
‘비지자내’의 ‘비’는 원래 어깨를 나란히 한다는 뜻이나 여기서는 보조자로서 원조하는 역할을 수행한다는 의미다. 적이 파견한 첩자의 활용을 언급한 것이다. ‘부자실’은 바로 이를 지적한 것으로 아군은 아무런 손실도 입지 않는다는 의미다. 반간계는 기본적으로 적의 첩보망을 역이용하는 계책을 말한다. 반간계의 출전은 《손자병법》 〈용간〉이다. 해당 대목이다.
“반간은 거짓 정보로 적의 첩자를 역이용하는 것을 말한다.”
적이 보낸 간첩을 매수하는 방식을 통해 아군에게 도움이 되는 쪽으로 활용하는 계책이 바로 반간계의 요체다. 《손자병법》은 반간계의 운용을 매우 중시했다. 해당 대목이다.
“적의 내부사정을 가장 잘 알 수 있는 관건은 반간의 활용에 있다. 반간을 후하게 대접해야 하는 이유다. 옛날 은나라가 흥기할 수 있었던 것은 이윤(伊尹)이 하나라에 첩자로 있었기 때문이다. 주나라가 흥기할 수 있었던 것도 여상(呂尙)이 은나라에 첩자로 있었기 때문이다. 오직 이치에 밝은 명군과 현명한 장수만이 지략이 뛰어난 인재를 첩자로 활용할 수 있다. 사실 그리해야만 능히 대업을 이룰 수 있다. 첩자의 활용은 용병의 핵심이다. 전군이 첩자가 제공하는 정보를 토대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반간의 활용은 여러 유형이 있다. 적이 파견한 간첩의 소재를 파악한 후에도 전혀 모르는 척하면서 고의로 거짓 정보를 흘리거나, 융숭한 대우로 매수해 아군에게 유용하게 활용할 때 반간계를 구사하면 효과적이다. 이를 통상 장계취계(將計就計)라고 한다. 저편의 계책을 미리 알고 역이용하는 계책을 말한다. 여기의 ‘장’은 취(就)와 마찬가지로 나아갈 진(進)의 뜻이다. 일취월장과 마찬가지로 적의 계책을 좇아 한 단계 더 나아간다는 뜻이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는 우리말 속담과 취지를 같이한다. 반간계는 장계취계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계책으로 최고 수준의 첩보작전에 해당한다. 당나라의 두목은 반간계를 이같이 설명해놓았다.
“적의 첩자가 아군을 정탐하기 위해 침투하면 반드시 두터운 이익으로 매수해 거꾸로 아군에게 소용이 되도록 만든다. 또는 일부러 모르는 체하며 거짓 정보를 흘리는 식으로 대응해 적의 첩자가 오히려 아군을 위해 일하는 셈이 되도록 만든다.”
반간계의 정곡을 찌른 해석이다. 역사상 인구에 회자하는 대표적인 반간계는 초한전 때 유방의 책사 진평(陳平)이 구사했던 것이다. 이것이 항우와 유방의 운명을 갈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기》 〈진승상세가〉에 따르면 기원전 204년 여름 4월, 초나라 군사가 지금의 하남성 형양현(滎陽縣) 남쪽에서 유방을 포위하자 상황이 급해졌다. 유방이 강화를 청하면서 형양의 서쪽 지역을 베어내 그곳만 갖겠다고 했다. 범증이 항우에게 형양을 급히 공격할 것을 권했다. 이 소식을 들은 유방이 크게 우려했다. 항우가 한나라에 사자를 보냈다. 사자가 도착할 즈음 진평이 태뢰(太牢)를 다 갖추어놓게 했다. 태뢰는 제사나 연회 때 소와 양, 돼지 등 3가지 희생(犧牲)을 모두 갖추는 것을 말한다. 돼지와 양만을 갖춘 것은 소뢰(小牢)라고 한다. 한창 음식을 올리는 와중에 진평이 불쑥 나타나 초나라 사자를 보고는 짐짓 놀라는 체했다.
“범아부(范亞父)의 사자인 줄 알았는데 항왕(項王)의 사자가 아닌가.”
범아부는 항우의 책사 범증(范曾)을 말한다. 항우는 그를 작은아버지와 같다는 뜻의 ‘아부’로 부르며 높이 받들었다. 그러고는 그 음식을 내간 뒤 조악한 음식을 초나라 사자에게 올리게 했다. 초나라 사자가 귀환해 이를 상세히 보고했다. 항우가 범증을 크게 의심했다. 범증이 형양성에 급공을 가해 함락시킬 것을 거듭 권했다. 그러나 반간계에 넘어간 항우는 범증을 의심한 나머지 그의 말을 전혀 들으려 하지 않았다. 범증은 항우가 자신을 의심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내 화를 냈다.
“천하의 대사가 대체로 정해졌으니 이제 군왕이 스스로 처리하십시오. 원컨대 해골(骸骨)의 청을 받아주십시오.”
‘해골’은 사직하여 물러난다는 뜻이다. 그는 돌아가던 중 초나라 도성인 팽성(彭城)에 이르기도 전에 등에 악성종양이 나 이내 객사하고 말았다. 항우는 범증을 내친 뒤 이내 쇠망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당시 범증의 말을 듣지 않는 바람에 궁지에 몰린 항우는 기원전 203년 8월 유방과 함께 천하를 반으로 나누어 가질 생각으로 맹약을 맺었다. 지금의 하남성에 있던 전국시대의 운하인 홍구(鴻溝)를 중심으로 서쪽은 한나라, 동쪽은 초나라에 귀속시키는 내용이었다. 이를 홍구지약(鴻溝之約) 내지 홍구위계(鴻溝爲界)라고 한다. 대치 상태에 있는 쌍방이 경계를 정하여 구역을 나누는 것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된다.
강화가 성립되자 항우는 억류하고 있던 유방의 부친 태공과 부인 여후를 돌려보낸 뒤 동쪽 팽성으로 철군하기 시작했다. 유방도 서쪽 관중으로 돌아가려 했다. 진평과 장량이 만류했다.
“한나라가 천하의 반을 차지하자 제후들이 모두 귀부했습니다. 지금 저들을 풀어준 채 공격하지 않으면 이는 호랑이를 길러 근심거리를 남기는 것입니다.”
유방이 이를 좇아 제나라 왕으로 봉해진 한신과 위나라 상국으로 있는 팽월(彭越)에게 사자를 보내 초나라를 함께 칠 것을 다짐했다. 이해 10월, 유방의 군사는 홀로 항우의 군사를 공격했다가 오히려 대패하고 말았다. 낙담한 유방이 장량에게 한신과 팽월이 명을 따르지 않는 이유를 묻자 장량이 대답했다.
“한신이 제나라 왕의 자리에 오르게 된 이유는 그의 요청에 따른 것으로 결코 대왕의 뜻에 따른 것이 아닙니다. 팽월 또한 위나라 땅을 평정한 공으로 상국이 되었으나 위왕이 죽고 없는 마당에 아직까지 위왕이 되지 못했으니 그가 불만을 품은 것은 당연합니다. 속히 땅을 떼어주어 이들을 다독이십시오. 그 후 두 사람에게 초나라와 싸우게 하면 초나라는 쉽게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유방이 장량의 계책을 좇았다. 이해 12월 항우는 한나라 연합군에게 대패해 해하(垓下)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해하는 지금의 안휘성 영벽현 동남쪽에 소재한 높이 12미터의 절벽 아래를 말한다. 궁지에 몰린 항우는 군사는 적고 식량도 다한 까닭에 이내 영루 안으로 들어가 문을 굳게 걸어 잠갔다. 제후들의 군사가 속속 도착해 여러 겹으로 포위했다. 결국 중과부적으로 해하 전투에서 참패한 항우는 오강(烏江)까지 밀려나 그곳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 초한전의 전개과정을 보면 결과적으로 진평의 반간계가 승패를 가른 셈이다.
현재 비즈니스 정글에서도 반간계는 무시로 등장한다. 대개 상대방의 정보를 얻는 데 활용된다. 정보전에서 패하면 현재 아무리 막강한 실력을 보유하고 있을지라도 결국 항우의 길을 걷게 된다. 세계시장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우선 자신의 실정을 파악하려는 상대의 첩보공세를 무력화시켜야 한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상대의 실정을 정확히 알아내야만 한다. 세계시장을 석권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내막을 속속들이 알 필요가 있다. 21세기의 경제전쟁이 실제의 전쟁을 방불케 하는 까닭에 어쩔 수 없다.
상대의 계책을 파악한 뒤 이를 역이용해 함정에 빠뜨리는 장계취계의 진수가 바로 반간계에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반간계가 주효할 수 있는 관건은 철저한 비밀에 있다. 《손자병법》에서, 기밀이 누설되면 첩자는 물론 기밀을 알게 된 자까지 모두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한 이유다. 반간계에 걸리지 않기 위해서는 반드시 고급정보가 흘러나온 배경과 그 내용 등을 면밀히 검토해야만 한다. 반간계는 일종의 지략싸움에 해당한다.
중국상하오천년사
홍타이지의 반간계
皇太極用反間計
누르하치가 죽은 이듬해에 홍타이지는 직접 군사를 거느리고 명나라로 진격했다. 세 갈래로 나누어 남으로 내려온 홍타이지의 군대는 먼저 금주성(錦州城)을 공격했다. 홍타이지의 목표가 금주성이 아니라 영원성이라고 단정한 원숭환은 영원성에 남았으며 대신 수하 부장에게 기병 4천을 주어 금주성을 구원하게 했다. 그런데 구원병이 아직 출발하지도 않았을 때 홍타이지가 보낸 후금의 군대가 영원성에 당도하여 성을 공격했다.
원숭환은 성 위에 올라 전투를 독려하고 성 밖의 명나라군은 성 안의 군대와 함께 후금의 군대를 내외로 협공했다. 그 결과 후금의 군대는 버티지 못하고 퇴각해 버렸다. 홍타이지는 군사를 돌려 금주를 공격했지만 명나라군이 결사 항전하는 바람에 그것도 뜻대로 되지 않았다. 홍타이지는 하는 수 없이 군대를 이끌고 자기 나라로 되돌아갔다.
청 태종 홍타이지
군사를 징발하는 신표
나무로 만들었으며 길이 20.3센티미터, 너비 31.2센티미터, 두께 2.6센티미터이다. 홍타이지가 동북의 각 부족들을 통일할 때 사용한 군사 징발의 신표로, ‘관온인성황제신패(寬溫仁聖皇帝信牌)’라는 한자가 쓰여져 있다.
원숭환은 여러 번 대승을 거두었으나, 위충현의 엄당들은 그 공로를 자신의 공로부에 기록했으며, 원숭환이 직접 금주를 구원하러 가지 않은 것을 트집 잡았다. 결국 원숭환은 사직하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1627년, 희종이 죽고 동생 주유검(朱由檢)이 황제가 되었는데, 그가 바로 사종(思宗)이다. 연호가 숭정(崇禎)이기 때문에 숭정제라고 한다. 위충현이 간신임을 일찍부터 알고 있던 숭정제는 즉위하자마자 그의 죄목을 조정에 선포하고 봉양(鳳陽)으로 귀양을 보냈고, 위충현은 귀양 가는 도중에 자살했다.
숭정제는 원숭환을 다시 조정에 불러 올려 병부상서로 임명하고 하북과 요동의 모든 군사를 지휘하게 했다. 다시 영원으로 돌아온 원숭환은 뛰어난 병사들을 선발하고 군대를 정돈하여 군사들의 사기를 북돋았다. 한번은 동강 총병 모문룡이 허위로 군공을 보고하자, 원숭환은 숭정제가 하사한 상방보검(上方寶劍, 유사시 주청하지 않고도 수하 장병을 죽일 수 있는 권한을 대표하는 보검)으로 모문룡을 즉시 참했다. 연이어 패전한 홍타이지는 영원과 금주의 방비가 엄하다는 것을 깨닫고 진군 노선을 바꾸었다.
1629년 10월, 홍타이지는 수십만 군사를 거느리고 용정관과 대안구(大安口, 하북성 순화시 북쪽)로 길을 돌아와서 명나라 도성 북경을 들이쳤다. 이는 원숭환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원숭환은 급히 군사를 이끌고 이틀 밤낮을 달려 북경에 도착했다. 그리고 숨 돌릴 겨를도 없이 격렬한 싸움을 시작했으며, 끝내 후금의 군대를 물리쳤다. 후금의 군대가 물러가자 숭정제는 원숭환을 불러 친히 위로했다. 그런데 위충현의 잔당들이 후금의 군대가 이번에 길을 돌아와서 북경을 들이친 것은 원숭환이 끌어들였기 때문이라는 망언을 퍼뜨렸다.
의심이 많은 숭정제는 그 망언을 듣고 원숭환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때 후금군의 포로로 사로잡혔던 환관 하나가 도망쳐 와서는, 원숭환이 홍타이지와 밀약을 맺고 북경을 팔아먹었다고 허위 고발을 했다. 숭정제는 즉시 원숭환을 궁궐로 불러 추궁했다. “경은 이실직고하라! 어찌하여 대장 모문룡을 사사로이 죽였는가? 그리고 어찌하여 후금의 군대가 북경성에 당도했는데도 즉시 달려오지 않고 시간을 지체했는가?” 뜻밖의 일이라 원숭환이 미처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있는 사이 숭정제는 금의위에게 명해 그를 결박해 옥에 가두게 했다. 그러고는 대신들의 권고도 듣지 않고 이듬해에 원숭환을 참수했다.
원숭환의 무덤
반간계(反間計)를 써서 원숭환을 없애버린 홍타이지의 기쁨은 말할 나위가 없었다. 1635년, 홍타이지는 여진을 만주(滿洲)로 고치고 성경에서 황제로 즉위했으며 국호도 청(淸)으로 고쳤다. 그가 바로 청나라 태종(太宗)이다.
청 태종 문황제 익보(謚寶) 및 인문(印文)
제 33 계 반간계(反間計)
“반간계”는 일종의, “그 사람이 하는 방법으로 그 사람을 다스린다”는 계책이다. 적이 간첩을 보내 정탐행위를 하고 파괴활동을 하는 것을 알게 된 후에도, 전혀 모르는 척 하면서 고의로 거짓 정보를 그에게 흘려 주거나 융숭한 대우로 그를 매수하여 아군에게 유용하도록 만든다.
*比之自內, 不自失也. (비지자내, 부자실야.)
한 쪽이 “간첩”을 보내면 “역 간첩”도 당연히 있게 마련이다. 그 것들은 자고 이래로 적대하는 쌍방이 늘 사용하는 수단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어느 편이든지를 불문하고, 치밀하게 계획을 세우고 고도의 기교를 가지고 운용해야 만이 상대의 신임을 얻을 수 있다. 이것은 실로 고도의 지혜와 담력 그리고 식견을 요한다.
원 문
疑中之疑. 比之自內, 不自失也. (의중지의. 비지자내, 부자실야.)
번 역
적이 우리를 현혹시키기 위한 포진(布陣)에 반대로 다시 하나의 포진을 설치한다. 만약 적 내부의 내응을 이용해서 승리를 얻게 되면 아군은 아무런 손해를 입지 않을 수 있다.
(역자 주: 比之自內, 不自失也는 <주역: 비(比)) 괘에서 나왔다. 이 괘의 위 괘는 감(坎) 괘이니 곧 물(水)이요, 아래 괘는 곤(坤) 괘이니 곧 땅(地)이다. 원래 물과 땅은 서로 의뢰한다. 즉, 반간계를 사용하는 것은 적의 음모가 오히려 아군에게 소용이 되도록 한다는 것이다. 비(比)는 친하게 되어 서로 의지하다, 또는 무리를 짓다의 뜻이다.)
해 설
이 계는 <손자병법: 용간편(用間篇)>: “소위 역 간첩은, 적이 보낸 간첩을 매수하거나 이용하여, 그가 아군의 소용이 되도록 하는 것(反間者, 因其敵間而用之. 반간자, 인기적간이용지.)에서 나왔다.
손자는 “반간계”의 운용을 매우 중시하여, “그 중의 핵심은 역 간첩을 사용할 줄 아는 것(知之必在反間 지지필재반간)”이라 생각했다. “반간계”는 일종의, “그 사람이 하는 방법으로 그 사람을 다스린다”는 계책이다. 적이 간첩을 보내 정탐행위를 하고 파괴활동을 하는 것을 알게 된 후에도, 전혀 모르는 척 하면서 고의로 거짓 정보를 그에게 흘려 주거나 융숭한 대우로 그를 매수하여 아군에게 유용하도록 만든다. 이렇게 함으로써, 아군은 아무런 손실도 없는 가운데 승리를 거두는 목적을 달성하게 된다.
생활에서의 활용
<36계>와 군사-주유(周瑜), 계책으로 조조(曹操)를 이기다
“반간계”는 쉽게 이야기 하면, “상대의 계책을 역이용해서 상대를 공격(將計就計 장계취계)”하는 것으로, 첩보전에서 흔히 사용되는 계책이다. “반간계”에 대해서는 당(唐) 시대 두목(杜牧)이 아주 명확하게 해석한 바 있다: “적의 간첩이 나를 정탐하면, 내가 먼저 그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나서, 혹은 그를 매수해서 유혹해 거꾸로 아군에게 소용이 되도록 하거나, 혹은 일부러 모르는 체 하여 거짓 정보를 전달하고는 가만히 놔 둔다. 다시 말하면, 적의 간첩이 거꾸로 아군에게 소용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서기 208 년, 조조는 형주(荊州)를 점령한 후 기세를 몰아 일거에 오(吳)를 멸망시키려 하자, 동오의 도독 주유는 군사를 이끌고 적을 맞이 하여 조조와 적벽(赤壁)에서 서로 대치하고 있었다. 지피지기(知彼知己)를 위해 주유는 배를 타고 친히 조조의 진영을 관찰하였다. 조조군은 양자강을 따라 24 개의 수문이 있는 수채(水寨)를 짓고 있었다. 형주군의 큰 배들은 바깥에 배치해 마치 성벽과도 같았다. 북방군의 작은 배들은 안에서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강안(江岸)에는 총길이 300 리에 이르는 지상채를 지어 놓았는데 등불을 휘황하게 밝혀 놓았고 실로 일망무제(一望無際)였다. 주유는 속으로 조조의 수군 도독 채모(蔡瑁)와 장윤(張允)이 과연 수군 전문가답다고 생각하였다. 조조군을 물리치려면 반드시 먼저 이 두사람을 제거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판단하였다. 주유가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장간(蔣干)이 방문했습니다”라는 전갈이 왔다. 주유는 기뻐서 “이제 방법이 있겠군!”하고 쾌재를 불렀다.
장간은 주유의 동학 친구로써 현재는 조조 수하의 문관으로 일하고 있었다. 이 번에 방문하러 온 것은 조조를 위해 주유를 설득하러 온 것이었다. 장간은 오기 전 자기를 냉대할까봐 걱정하였는데, 생각과는 달리 주유가 뜨겁게 그를 환대하였다. 주유는 아주 통이 크게 오랜 동학 친구를 군영 내 사방으로 안내하였다. 장간은 군기가 엄하고 군량이 풍부한 것을 보고는 속으로 주유에게 탄복하였다. 환영연회에서는 주유는 짐짓 취한 척 하고는 장간에게 옛날 어렸을 때와 같이 그와 한 방에서 자자고 요청하였다.
장간은 주유가 코를 골며 자고 있는 동안, 살며시 일어 나 주유의 기밀 문서를 몰래 훔쳐 보았다. 순간, 장간은 채모와 장윤이 주유에게 보낸 편지를 발견하게 되었는데, 내용인 즉슨: “저희들은 원래 형주 사람으로 조조에게 투항한 것은 형편이 어쩔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저희는 이미 조조를 속여 조조군을 수채 중간을 둘러 싸도록 하였습니다. 기회가 오기만 하면 조적(曹賊)의 목을 장군에게 바치겠습니다.” 장간은 편지를 보고 난 후 편지를 품안에 넣고는 작별인사도 하지 않은 체 밤을 도와 형주로 돌아 가 편지를 조조에게 바쳤다.
조조는 편지를 본 후 칠공에서 연기가 나도록 화가 나, 즉각 채모와 장윤을 불러 들인 후 우선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말했다: “나는 그대들이 즉시 출병하여 작전에 임하도록 준비하고 있소.” 채모가 급히 말했다: “안 되옵니다! 병사들이 아직 수상전에 익숙하지 않아 가볍게 출병할 수가 없습니다.” 조조는 책상을 치며 일어나 큰 소리로 일갈했다: “네놈들이 병사들을 훈련마칠 때까지 기다리다가는 내 목이 먼저 주유놈에게 바쳐질 것이다!” 조조는 여기까지 말하고는 수종들에게 즉각 채, 장 두 장수의 목을 베도록 명하였다. 조조는 수상전 경험이 없는 모개(毛玠(개)와 우금(于禁) 두 사람을 채, 장을 대신해 도독으로 삼았다.
주유는 자기의 “반간계”가 성공했다는 것을 알고는 기뻐 소리쳤다: “내가 걱정한 것은 바로 그 두 사람이었는데, 이제는 겁날게 없다! 조조가 이번에 동오를 침범해 온 것은 의심할 바 없이 반드시 패하고 말 것이다!”
<36계>와 비즈니스-IBM 회사의 한 수 위 계책
“반간계”는 간첩을 사용하는 계략으로, 비즈니스 경쟁중에는 비즈니스 정보를 얻기 위해 주로 사용된다. 비즈니스 정보를 얻는 것은 정당한 경쟁의 법칙을 위반하지 않는 전제 하에 간첩이라는 수단을 사용하기도 하고, 정면에서 공개적으로 이루워지기도 한다. 기업 경영자는 비즈니스 정보전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상대가 우리의 실정을 알려고 노력하여도 소용없도록 하는 한 편, 우리가 상대의 실정을 알려고 노력하는 것을 상대가 알아채지 못 하도록” 하여야 한다.
20 세기 60 년 대, 미국의 IBM 회사는 세계 상용 컴퓨터 시장을 독점하고 있었다. 일본 회사는 반도체 컴퓨터 분야에서 미국을 따라 잡고 또 추월하기 위해서 혈안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미국의 IBM과 경쟁한다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시간을 단축하려면, 미리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미국의 신기종에 대한 정보를 얻어 내어야 했다.
그래서, 히타치 회사는 상업 스파이 활동을 통해 IBM 회사의 새로운 세대 308X 컴퓨터의 절대 기밀 설계 자료 27 권 중 10 권을 손에 넣게 되었다. 그 자료는 아주 중요한 가치를 갖고 있었는데, 1980 년 11 월, 그 내부 직원인 레이몬드 카데이터의 손으로부터 구한 것이었다.
나머지 17 권의 자료를 손에 넣기 위해 히타치 회사는 계속해서 노력했다. 그 회사의 고급 엔지니어 임현치(林賢治)는 히타치 회사와 업무적으로 왕래가 있는 맥스웰 페리에게 전보를 보내, 나머지 17 권을 손에 넣을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요청하였다.
페리는 IBM에서 이미 21 년을 근무하였으며, 그만두기 전에는 그 회사의 첨단 컴퓨터 계통 실험실 주임을 역임하였었다. 전보를 받은 후, 그는 그와 IBM 회사와의 관계를 고려해 이 사실을 IBM 회사에 알려 주었다. IBM의 안전 보안 업무를 맡고 있는 차리 카라한은 사실을 더 확실히 파악하고, 히타치 회사의 상업 스파이 활동에 관한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 페리에게 도움을 요청하게 되었고, 페리는 히타치 방면의 임현치에게 접근하여 이중 스파이 노릇을 하기로 동의하였다.
철저하게 기술 절도범의 책임을 추궁하기 위해, FBI는 유혹해서 잡아들이는 방법을 채택했다. 그들은, 미국 회사의 고급 간부 두 사람이 퇴직하게 되는데, 그 두사람을 통하면, 어떠한 고급 기밀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
그리고 핸드북 등등 모두 손에 넣을 수 있으니, 히타치 회사가 얻고자 하는 것들도 그 두사람이 모두 해결할 수 있다고 소문을 내었다. 그래서 히타치 회사 쪽에서는 이 것이 유도하는 계략인 줄 모르고, 마침내 함정에 빠지게 되었다.
1982 년 6 월, FBI는 히타치 회사가 보낸 정보 수집 직원을 체포하였다. 히타치는 IBM에 의해 증거가 잡혀 마침내 피소되었다. 미, 일 양국 정부의 적극적인 참여 속에 샌프란시스코 법원은 임현치에게 1 만 달러의 벌금과 집행유예 5 년을 선고하였다. 이 사건에 참여한 다른 일본 직원도 4 천 달러의 벌금과 집행유예 2 년에, 훔친 자료 모두 반납의 판결을 받았다.
히타치 회사는 “산업 스파이”의 계책으로 신기종에 대한 자료를 손에 넣었으나 IBM 회사는 “반간계”로서 히타치 회사에게 참패를 안겨 주었으니, IBM 회사의 계책이 한 수 높았다고 할 수 있다. 즉, “그 사람이 하는 방법으로 그 사람을 다스린다”는 계책이니, 상대의 모략에 대해 충분히 알고 또 이해한 연후에, 일부러 상대의 의도에 말려 드는 듯이 보이고는, 상대의 계책을 역이용하여 상대를 올가미에 얽어 매는 것이 바로 “반간계”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36계>와 처세-은(銀) 세공공 이씨(李氏), 절묘하게 “반간계”를 사용하다
“반간계”를 처세에 사용할 때에는, 허상으로 상대를 미혹시켜서 자기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생활 중 이러한 허상에 미혹되지 않아야 한다. 남의 말을 전혀 안 믿어서도 안 되지만, 모두 믿어도 안 되며, 선택적으로 참고하고 그 중에서 진실된 성분과 거짓된 부분을 잘 구분해야 한다.
왕가만(王家灣)에 왕(王) 목수가 있었는데 사람이 마음이 넓고 성실하였다. 부인이 일찍 죽어 본인이 아버지는 물론 엄마 노릇까지 하면서 아주 힘들게 두 아들을 키웠다.
그러나 아들들이 장성하게 되자, 모두들 각자 자기 일만 생각하게 되어 아버지를 부담으로 여기게 되었다.
왕 목수의 친구 은 세공공 이덕승(李德勝)이 이러한 처지를 알게 된 후 그를 위해 한 가지 계책을 내었다.
이씨는 왕 목수의 큰 아들 집에 들렸는데, 대문에 들어 서자 큰 아들이 웬일이냐고 물었다. 이씨가 대답하기를: “자네 아버지를 만나 빚을 좀 받아야겠네.”
“아버님은 동생 집에 계십니다만, 아버지께서 무슨 빚을 지셨습니까?”
“이전에 자네 아버지가 늘 나를 찾아 와 은 부스러기를 은자로 만들어 달라고 부탁하곤 했지. 그 때는 우리 둘은 형제처럼 서로 친했기 때문에 나도 돈을 받을 생각을 안 했지. 그런데 요새 형편이 좀 어려워서 그사람에게 몇 푼이라도 받아서 쓸까하고.”
큰 아들 부부는 이 말을 듣자 마자 눈에 불을 키고 물었다: “아저씨, 저희 아버님이 은자를 얼마나 만드셨습니까?”
이씨가 대답했다: “어떨 때는 30 량, 어떨 때는 50 량,,, 많았지. 어떻게 그걸 다 기억하겠는가? 아버님이 아무 말씀 안 하시던가?”
“아무 말씀이 없었습니다!”
“흥, 그 늙은이, 속이 좁구만, 지금까지도 속을 다 털어 놓지 않다니.”
이씨는 말을 마치고는 둘 째 아들 집으로 향했다. 큰 아들 부부는 가만히 뒤를 따라가 몰래 엿들었다.
이씨는 둘 째 아들 집에서도 왕 목수가 은자를 만든 일을 다시 털어 놓았다. 마침 왕 목수는 집에 없었다.
이씨는 둘 째 아들 집을 나서면서, 두 형제와 동서가 모두 몰래 듣고 있다는 것을 잘 아는지라, 일부러 후회하는 듯이 그들에게 들리도록 내어 뱉었다: “술 좋아하는 늙은이 술이 문제야! 황주 두 잔이 배 속에 들어 가니 주둥이를 가만 놔두지 못하는구나. 오랜 친구의 수 십년의 비밀을 모두 내가 털어 놓았으니. 에이!”
말을 마치고는 스스로 자기 볼을 때리는 것이었다.
이 날 이후, 두 아들은 아버지를 극진히 모셨다. 간혹 아들이 은자를 만든 것에 대해 물으면, 왕 목수는 없다고 대답했다. 두 아들은 절대 그 말을 믿지 않았다. 그저 노친네가 입이 무겁다고만 생각했다. 당연히, 노인이 죽고 난 후, 은자의 그림자도 볼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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