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병법

제30계 반객위주反客爲主

한림정(신방현) 2018. 6. 25. 13:39


 반객위주反客爲主 주인과 손님이 바뀌다

 




 


 

반객위주(反客爲主)

굴러들어 온 돌이 박힌 돌을 뽑아낸다

 

손님이 도리어 주인(主人) 노릇을 한다는 뜻으로, 이른바 주객(主客)이 뒤바뀌는 것이니, 자신(自身)의 수동적(受動的)인 상황(狀況)을 능동적(能動的)으로 바꾸어서 주도권(主導權)을 장악(掌握)하는 전략(戰略)을 이름

 

反 돌이킬 반/돌아올 반, 어려울 번, 삼갈 판

客 손 객

爲 하 위/할 위

主 임금 주/주인 주

 

’손님의 입장으로부터 차츰 주인의 자리를 차지하는 책략이다.’

이러한 책략을 성공시키려면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서

한 걸음씩 실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

조급하거 서두르다가는 실패하기 십상이다

 

군웅할거 시대의 원소와 한복 후한 말, 황실의 권위가 약해지자 군웅들이 할거하면서 패권을 다투었다. 그 무대는 주로 중원, 즉 황하 유역의 대평원에서 전개되었다. 당시 황하의 북쪽에서는 원소와 공손찬이 패권을 다투고 있었는데, 그 사이에 있는 기주 땅의 한복은 원소와 서로 돕는 친구(親舊)사이였다. 원소의 세력은 점점 강성해졌지만, 군사를 먹일 식량이 부족했다. 이때 한복은 원소의 사정을 알고 양식을 보내서 해결해 주었다. 그러나 남이 도와 주는 양식으로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자 원소는 양식 창고가 있는 기주를 공격하기로 했다. 친구(親舊)인 한복이 기주를 다스리고 있지만, 원소는 오히려 그걸 이용한 '반객위주'의 전략으로 기주를 차지했다

 

第三十計 反客為主

乘隙插足,扼其主機,漸之進也。

譯:有空子就要插腳進去,扼住他的主腦機關。

《易經•漸》卦說:“循序而進”就是這個意思。





Make the host and the guest exchange roles

(反客為主/反客为主, Fǎn kè wéi zhǔ)

Usurp leadership in a situation where you are normally subordinate.

 Infiltrate your target. Initially, pretend to be a guest to be accepted,

but develop from inside and become the owner later.

 

 

(병전계) 30계 반객위주(反客爲主) - 손님으로 갔다가 주인행세를 하라

反客爲主 乘隙揷足, 扼其主機, 漸, 之進也.

 

주인이 손님을 접대하지 못해 오히려 손님의 접대를 받는다는 뜻으로 국면을 전환시켜 주도권을 장악하는 계책이다. 적의 빈틈을 노려 한 발을 들여놓은 뒤 점차 세력을 강화해 마지막에는 적의 수뇌부나 요충지를 장악한다. 이는 “전진하고자 하는 방향으로 서서히 나아간다”는 뜻을 지닌 〈점괘(漸卦)〉의 괘사와 취지를 같이한다.

 

[해설]

 

승극삽족(乘隙揷足)은 적의 빈틈을 노려 한 발을 들여놓는다는 뜻으로 ‘승극’은 국면전환의 계기에 적극 올라탄다는 뜻의 승기(乘機)를 의미한다. 액기주기(扼其主機)의 ‘주기’는 수뇌부에 해당하는 기관을 가리킨다. 전쟁에서는 곧 사령부 내지 자기편에는 꼭 필요하면서도 적에게는 해로운 요해처(要害處)를 뜻한다. 조금만 다쳐도 생명에 지장을 주는 몸의 중요한 부분인 급소와 같다. 〈점괘〉의 ‘점(漸), 지진(之進)’ 구절은 목표를 향해 서서히 나아가는 까닭에 길하다는 취지에서 나온 것이다. 반객위주 계책은 기본적으로 손님에 해당하는 원정군이 전장의 주도권을 장악해 주인 행세를 하고자 할 때 사용한다. 반객위주 용어의 유래와 관련해 크게 3가지 설이 있다. 《당리문대》와 《손자병법》의 두목(杜牧) 주석, 《삼국연의》 제71회 대목 등이 그것이다. 《당리문대》에서 위국공 이정은 당태종에게 이같이 말했다.

 

“《손자병법》 〈작전〉에 이르기를, ‘군사가 원정을 나가 백성이 먼 길까지 군수물자를 나르게 되면 이는 백성을 빈곤하게 만드는 길이다’라고 했습니다. 이는 피동적인 위치에 서는 것을 경계한 것입니다. 또 이르기를, ‘전쟁을 잘하는 자는 장정을 두 번 다시 징집할 일도 없고, 군량을 여러 차례 실어 나르는 일도 없다’고 했습니다. 이는 질질 끌며 머뭇거리는 것을 경계한 것입니다. 신이 주객(主客)의 군세를 비교해보건대 이는 주객의 위치가 고정된 것을 말했던 것이 아니고, 주인이 손님이 되고 손님이 주인이 되는 전술을 언급한 것입니다.”

 

반객위주의 취지를 정확히 언급한 것이다. 《손자병법》 십일가주본에 따르면 당나라 때 두보와 더불어 이두(二杜)로 통칭되던 두목은 주객의 개념을 이같이 풀이해놓았다.

 

“내가 주인이 되고 적이 손님이 된다는 것은 곧 양도를 끊고 적의 퇴로를 지키는 것을 뜻한다. 내가 손님이 되고 적이 주인이 된다는 것은 곧 적이 아군의 군주를 공격하는 것을 뜻한다.”

 

이 또한 나름대로 반객위주의 취지에 부합한다. 그러나 이정이 당태종에게 말한 것처럼 정곡을 찌르지는 못하고 있다. 《삼국연의》 제71회에도 반객위주에 관한 언급이 나온다. 법정(法正)이 황충(黃忠)에게 이같이 말했다.

 

“위나라의 하후연(夏侯淵)은 사람이 경박하고, 오직 용맹만 믿을 뿐 계략이 거의 없습니다. 군사를 격려한 뒤 영채를 뽑아 전진하도록 하십시오. 조금씩 나아가며 휴식을 취한 뒤 그를 유인해 싸움을 걸도록 만들면 이내 능히 사로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반객위주의 계책입니다.”

 

황충이 이를 좇았다. 영채를 차려 며칠씩 쉬었다가 전진하는 방식을 취했다. 성미가 급한 하후연이 이 이야기를 듣고 곧바로 공격에 나서려 했다. 휘하장수 장합이 만류했다.

 

“이는 반객위주 계책입니다. 지금 공격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싸우면 반드시 패하게 될 것입니다.”

 

장합이 한사코 말렸으나 하후연은 끝내 듣지 않았다. 결국 하후연은 황충이 쳐놓은 함정에 빠져 죽음을 당했다. 나관중이 《삼국연의》를 쓴 것은 원말명초이다. 이때에 이르러 반객위주 계책이 인구에 회자했음을 반증한다. 《당리문대》나 두목의 《손자병법》 주석을 기원으로 보는 것이 옳다. 보다 정확히 따지면 조조의 《손자병법》 주석을 꼽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조조는 아군이 적보다 압도적으로 우세한 상황을 주약객강(主弱客强)으로 표현해놓았다. 반대의 경우는 주강객약(主强客弱)이다. 조조가 여포의 생포를 예로 든 것은 주약객강의 상황에서는 병력이 10배가 아닌 2배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사실을 밝히려는 의도다. 주인과 손님이 빚어내는 전세(戰勢)는 어떤 고정된 이론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무수한 유형을 만들어낸다는 점을 언급하고자 했던 것이다. 결국 위국공 이정이 당태종에게 언급한 내용과 취지를 같이한다. 손님으로 가서 주인행세를 하는 반객위주의 취지와 정확히 맞아떨어진다. 반객위주 계책의 기원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필요한 이유다.

 

반객위주 계책의 대표적인 사례로 삼국시대 초기 원소(袁紹)가 동맹관계에 있는 한복(韓馥)의 기주(冀州)를 집어삼킨 경우를 들 수 있다. 원소와 한복은 원래 친구이자 동맹관계였다. 함께 동탁을 토벌했던 적도 있다. 원래 한복은 동탁에 의해 발탁되었던 인물이다. 비록 동탁토벌군에 참여하기는 했으나 잠재적인 경쟁자인 원소와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었다. 동탁토벌이 실패로 끝나자 원소는 제장들을 이끌고 기주의 한복을 찾아가 몸을 의탁했다. 하루는 원소의 문객 봉기(逢紀)가 원소를 찾아와 이같이 말했다.

 

“장군은 대사를 일으키고도 오히려 다른 사람에게 군사보급을 의존하고 있으니 이는 마치 단 1개의 주(州)도 점거하지 못한 것과 같습니다. 이같이 해서는 앞으로 자신의 몸조차 보전할 길이 없을 것입니다.”

 

원소가 한탄조로 말했다.

 

“기주의 군사는 강한데 나의 군사는 굶주려 있소. 만일 여기에 오지 못했다면 발붙일 곳조차 없었을 것이오.”

 

봉기가 계책을 냈다.

 

“한복은 일개 용재(庸才)에 불과할 뿐입니다. 은밀히 요동의 공손찬(公孫瓚)과 연락해 기주를 취하도록 하면 한복이 반드시 놀랄 것입니다. 이때 언변이 좋은 사람을 보내 길흉화복과 이해득실을 논하도록 하면 한복은 창졸간에 일어난 일로 궁지에 몰린 나머지 반드시 기주를 양보할 것입니다.”

 

원소가 크게 기뻐하며 곧 공손찬에게 서신을 보냈다. 원소는 서신에서 공손찬을 한껏 치켜세운 뒤 하루 속히 군사를 내어 기주를 취할 것을 종용했다. 원소는 이 서신에 만일 군사를 내어 기주를 치면 자신은 내응할 것을 약속했다. 원소의 서신을 받아본 공손찬이 크게 기뻐하며 곧 군사를 일으켜 기주로 쳐들어왔다. 공손찬은 한복을 방심하게 만들기 위해 겉으로는 동탁을 친다는 구실을 내세웠다. 그러나 사실 한복은 동탁에 의해 기주자사가 된 것이므로 공손찬이 아무리 동탁토벌을 내세웠다고 할지라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공손찬은 기주의 경내로 들어오면서 곧바로 한복을 동탁의 주구로 몰아세우며 공격을 가했다. 결국 원소가 의도한 대로 한복은 공손찬과의 교전에서 크게 밀려 열세에 놓이게 되었다. 이때는 마침 동탁이 손견과의 교전을 끝내고 장안으로 들어가던 때였다. 동탁군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하고 있던 원소가 곧바로 군사를 이끌고 기주의 동쪽에 있는 지금의 하남성 활현 부근인 연진(延津)으로 나아갔다. 이어 생질 고간(高干)과 한복의 심복인 신평(辛評)과 순심(荀諶), 곽도(郭圖) 등을 불러 한복을 설득하는 방안을 논의한 뒤 곧바로 이들을 한복에게 보냈다. 고간 등이 한복을 찾아가 입을 모아 말했다.

 

“공손찬이 연(燕)과 대(代) 일대의 군사들을 이끌고 무섭게 남진하고 있습니다. 기주의 모든 군현이 나서 이에 저항하고 있으나 그 예봉을 당하기가 어렵습니다. 원소 또한 군사를 이끌고 동쪽으로 가고 있으니 그 뜻을 헤아리기가 어렵습니다. 우리는 장군을 위해 심히 우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복이 두려워하며 물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소?”

 

기다렸다는 듯이 순심이 문득 반문했다.

 

“그대는 관인한 덕행으로 백성을 포용해 천하를 귀부시키는 점에서 원소와 비교해 어떻다고 생각합니까?”

 

“나는 그만 못하오.”

 

“위기에 처해 결단을 내리는 지용(智勇)에서 누가 낫다고 생각합니까?”

 

“나는 그만 못하오.”

 

“누대에 걸쳐 천하 사람에게 은덕을 베푼 점에서 누가 낫다고 생각합니까?”

 

“나는 그만 못하오.”

 

순심이 말했다.

 

“원소는 일대의 호걸입니다. 장군은 3가지 면에서 모두 그만 못하면서 그의 위에 오랫동안 있으려 들면 그는 반드시 장군의 밑에 있으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무릇 기주는 천하의 재부(財富)가 모여 있는 곳입니다. 그가 만일 공손찬과 힘을 합쳐 기주를 취하려 들면 장군의 목숨은 경각에 달린 셈입니다. 원소는 본래 장군의 옛 친구이고 또한 동탁토벌군의 동맹자이기도 합니다. 지금 취할 수 있는 계책으로는 기주를 들어 원소에게 주는 것뿐입니다. 그리되면 그도 반드시 장군에게 후하게 보답할 것이고 공손찬도 더 이상 장군과 싸울 수 없을 것입니다. 이는 장군에게 현인의 자리를 양보하는 이른바 양현(讓賢)의 명예를 안겨주고 일신 또한 태산과 같이 편안하게 되는 계책이 될 것입니다.”

 

한복은 성정이 소심하고 옹졸하여 이내 동의하고 말았다. 이 소식을 뒤늦게 들은 한복의 장사 경무(耿武)와 별가 민순(閔純) 등이 달려와 한복에게 간했다.

 

“기주는 군사가 100만이고 곡물은 10년간 지탱할 만합니다. 원소는 곤궁하기 그지없는 객에 불과할 뿐입니다. 그는 지금 우리를 우러러보며 모든 것을 의탁하고 있습니다. 이는 비유해 말하면 마치 어른이 아기를 안고 있는 것과 같으니 그는 젖을 떼는 순간 굶어 죽게 되어 있습니다. 어찌 어린애에게 기주를 넘겨주려 하시는 것입니까.”

 

한복이 고개를 내저었다.

 

“나는 본래 원씨 가문의 고리(故吏)였소. 하물며 재간도 원소만 못하고 덕 또한 그러하오. 현인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것은 예로부터 성인이 칭찬한 것이었는데 제군들은 어찌하여 이리 편벽되게 반대만 하는 것이오.”

 

‘고리’는 임직을 떠난 관료의 옛 속리(屬吏)를 말한다. 이들을 포함해 남에게 추천되어 관리가 된 사람도 자신을 추천한 사람을 부주(府主) 또는 거주(擧主)라고 부르며 그의 고리가 되어 생사고락을 같이했다. 한복은 당시 청류 사대부 내에서 나름대로 명성이 있던 인물이었다. 그래서 고리를 자처하며 자신을 추천한 원씨 가문에 대해 충성을 다짐했던 것이다.

 

경무와 민순 등이 한복에게 간하기에 앞서 한복의 종사(從事) 조부(趙浮) 등은 강노수(强弩手) 1만 명과 함께 맹진에 주둔하고 있었다. 이들은 한복이 기주를 들어 원소에게 넘겨주기로 했다는 소식을 듣고 경악한 나머지 급히 군사를 이끌고 기주로 돌아와 한복에게 간했다.

 

“원소의 군중에는 식량이 떨어져 군사들이 이미 이산하고 있고 비록 마등 등이 최근 귀부했다고는 하나 이들 또한 원소를 위해 전력으로 싸울 수 없으니 우리의 적이 되기에는 부족합니다. 허락만 해주시면 저희가 단 열흘 이내에 저들을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장군은 그저 방문을 활짝 열고 베개를 높이 하여 편히 자기만 하면 됩니다. 장군이 우려하고 두려워할 일이 무엇이 있겠습니다.”

 

그러나 한복은 이들의 간언마저 듣지 않았다. 그러고는 곧 관부를 중상시 조충의 옛집으로 옮긴 뒤 아들을 시켜 인수를 원소에게 바쳤다. 원소가 치소에 막 도착하려 할 즈음 한복의 휘하에 있던 10명의 종사가 다투어 한복을 버리고 떠났다. 오직 경무와 민순만이 칼을 휘두르며 원소의 진입을 저지했으나 이내 중과부적으로 저지할 수가 없었다. 원소는 두 사람을 모두 죽여버렸다. 원소가 이내 기주목이 되어 황제의 명의로 한복을 분위장군(奮威將軍)에 임명하였으나 한복에게는 거느린 병사도 없었고 그에 딸린 속관도 없었다. 오직 분위장군이라는 이름뿐이었다. 원소는 이미 동탁토벌군을 일으킬 때 분위장군을 자칭한 바 있다. 기주목을 자처한 원소가 한복을 분위장군으로 임명한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자기 멋대로 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원소는 공손찬을 이용해 한복을 궁지로 몰아넣은 뒤 한복의 심복인 신평과 순심 및 곽도 등을 끌어들임으로써 마침내 기주를 거저 차지했던 셈이다. 손님이 주인으로 둔갑한 대표적 사례에 해당한다. 손님에 불과했던 원소는 겉으로는 한복을 존중하는 척하면서 실제로는 자기의 심복을 곳곳에 배치하였다. 한복은 졸지에 주인의 자리에서 손님의 자리로 밀려나고 말았다. 결국 그는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기주를 황급히 빠져나오지 않으면 안 되었다.

 

21세기에도 이와 유사한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다른 지역의 시장을 개척하는 경우가 그렇다. 처음에는 해당 지역의 물정도 모르고 여러 규제가 있는 까닭에 우선 현지 기업과 손을 잡고 합자형식으로 회사를 세우거나 현지 공장을 설립한다. 대리상을 모집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현지의 물정도 알고 어느 정도 자리를 잡게 되면 이내 내부갈등을 계기로 반객위주의 사례가 빈발한다.

 

이를 개인 차원에서 활용할 수도 있다. 예로부터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라고 했다. 이는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다. 고부갈등이 대표적인 실례다. 이에 대한 해법으로 반객위주의 계책을 구사하면 된다. 손님으로 온 며느리를 집안의 주인으로 만드는 반부위주(反婦爲主), 백년과객(百年過客)으로 불리는 사위를 집안의 주인으로 만드는 반서위주(反胥爲主) 계책 등이 그것이다.

 

제 30 계 반객위주(反客爲主)

 

이 계의 원 뜻은 주인이 손님을 접대할 수 없어 오히려 손님의 접대를 받는다는 것이다. 그로부터 뜻이 전화되어, 불리한 정황에서 피동적인 것을 주동적으로 바꾸도록 노력하여 주도권을 장악하도록 하는 책략을 말하게 되었다. 차례대로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이 계를 실행할 때의 요체이다.

 

*乘隙揷足, 扼其主機. (승극삽족, 액기주기.)

 

군사상에서는, 주도권을 장악하는 것이 전쟁의 최고 원칙의 하나이다. 피동은 얻어 맞는 것이고, 손님의 위치(역자 주: 즉, 피동의 위치)에 있다는 것은 남의 지배를 받는 것을 의미한다. 피동적인 국면을 벗어나 주인의 지위에 있어야 만이 상대를 통제할 수 있고 이길 승산이 있는 것이다.

 

원 문

 

乘隙揷足, 扼其主機, 漸之進也. (승극삽족, 액기주기, 점지진야.)

 

번 역

 

빈틈을 타서 발을 들여 놓고, 적의 핵심을 통제할 수 있도록 하되, 차례대로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도록 해야 한다.

 

해 설

 

이 계의 명칭은 <삼국연의(三國演義)> 제 71 회에서 나왔다.

옛 사람들은 “반객위주”의 계를 아주 중요시 하였다. <십일가주 손자(十一家注 孫子)> 중에: “내가 먼저 군사를 일으키면 내가 객(客)이 되고 상대는 주인이 된다; 객이 되면 먹는 것이 부족하게 되고, 주인이 되면 배불리 먹고도 남게 된다. 그러니 적으로부터 모아 둔 것들을 탈취하고, 전답을 빼앗아, 적의 양식으로 군량을 삼고 적의 시설을 이용하게 되면, 우리는 배부르게 되고 적은 주리게 되니, 바로 객이 주인이 되도록 하는 책략이다.”라고 하였다.

 

차례대로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이 계를 실행할 때의 요체이다.

 

생활에서의 활용

 

<36계와 군사>-원소(袁紹), 계략으로 기주(冀州)를 취하다

 

이 계가 군사상에 쓰일 때는, 전쟁 중, 피동적인 것을 주도적으로 바꾸도록 노력하여, 전쟁의 주도권을 장악하는 책략을 말한다. 옛 사람들이 이 계를 사용한 것은 주로 동맹 관계에 있는 상대에 대해서였다. 흔히 동맹군을 원조하는 기회를 이용하여, 우선 근거를 마련한 후 차례 차례 자기의 세력을 심어 마침내 남의 지위를 빼앗아 대신 들어 앉게 된다.

 

원소와 한복(韓馥)은 서로 동맹관계에 있는 친구 사이로써, 이전에 함께 동탁(董卓)을 토벌한 적이 있었다. 그 후 원소는 세력이 점점 강성해졌고, 또 계속해서 그 세력을 키워 나가려 했다. 그가 하내(河內) 지방에 주둔하고 있을 때 군량이 부족해 크게 걱정하고 있었다. 오랜 친구인 한복이 이 사실을 알고는 먼저 사람을 보내 군량을 제공해서 원소로 하여금 군수 문제를 해결하도록 도와 주었다.

 

원소는 남이 보내 주는 군량에 의지하는 것으로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모사 봉기(逢紀)의 계책을 받아 들여 양식이 풍부한 기주를 차지하기로 결정했다. 당시의 기주 목사는 바로 한복이었지만 원소는 더 이상 고려할 여지도 없이 즉시 손을 써 그의 묘책을 바로 실행에 옮겼다.

 

그는 우선 공손찬(公孫瓚)에게 편지를 보내 그와 함께 기주를 치자고 제의했다. 공손찬은 진작부터 기주를 차지할 기회를 노리고 있었기에 원소의 제의는 그의 마음을 그대로 꿰뚫은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즉각 기주를 공격할 준비에 들어 갔다.

 

원소는 한편으로는 몰래 사람을 보내 한복을 만나 다음과 같이 제의했다: “공손찬과 원소가 힘을 합쳐 기주를 공격하면 기주는 지키기 어렵습니다. 원소는 과거부터 장군의 좋은 친구가 아닙니까? 최근에는 그에게 군량을 보내 도와 주지 않았습니까? 장군께서는 어이해서 원소와 연합해 공손찬을 대적하지 않으십니까? 원소가 성에 들어 오게 되면 기주는 바로 보전되는 것이 아닙니까?”

 

한복은 할 수 없이 원소를 기주로 불러 들였다. 이렇게 요청해서 온 손님은 겉으로는 한복을 존중하는 척 했지만, 실제로는 자기의 부하들을 하나 하나 마치 못을 박듯이 요소 요소에 배치하였다. 이렇게 되자, 한복은 자신은 이미 “주인”의 자리에서 “손님”에 의해 밀려 났다는 것을 확실히 깨닫게 되었다.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한복은 기주를 탈출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36계>와 비즈니스-“글락소”, 미국 시장의 문을 두드리다

 

다른 나라 시장을 개척하는 것과 같은 비즈니스 과정은 자주 “반객위주”의 단계를 거쳐야 한다. 오늘날 많은 지방의 시장은 그 지방의 여러 가지 속박이나 규정에 의해 제한을 받는게 보통이다. 외지 제품이 다른 지방에 진입하는 것은 상당히 어렵다. 그래서 기업 경영자들이 자기의 지혜를 발휘해 합당한 계책을 세워야 한다. 즉, 현지 기업과 손을 잡고 경영하거나, 합자나 현지 공장 설립, 그리고 대리상을 모집하는 등의 방법을 통해 순조롭게 현지 시장을 개척해야 한다.

 

200 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영국의 글락소 제약은 전 세계에 70 여개 법인이나 공장을 가지고 있고, 생산 제품은 150 개 이상의 나라에 걸쳐 판매될 뿐 아니라 그 나라 약품 시장의 판매 순위에서 모두 상위권을 점하고 있는 유명한 제약회사이다.

 

“글락소”가 전통적이고 쇠락한 일개 회사에서,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제품이 국제 시장에서 판매 되는 다국적 기업으로 발전한 비결은 전략적 안목을 가진 경영 책략과 과감한 모험에 있었다.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큰 양약 시장이다. 역사가 백년 이상되었거나 세력이 막강한 여러 기업들이 미국의 약품시장을 거의 분점하고 있는 상황이라 거기에 새롭게 끼어 들어 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글락소는 독특한 경영 방식으로 아주 짧은 시간 내에, 자리를 확고히 잡았을 뿐 아니라, “잔탁”(소화계통의 궤양 차료제)은 거의 전 미국의 위장약 시장을 점유하고 있다. 현재 “잔탁”의 미국 영업이 급증하여 전 세계영업액의 삼분의 일을 차지하고 있다.

 

글락소 제약이 미국 시장에 진출한 것은 1979 년부터 시작되었다. 당시, 그들은 미국의 조그만 제약회사를 인수해, 철저하게 현지의 시장상황을 파악했다. 인수 기업의 진정한 미국 기업화와, 미국의 문화에 완전히 융합되기 위해서, 글락소는 우선 그 회사의 미국 측 책임자에게 충분한 권한을 주었고, 그 결과 그 회사의 의사 결정이 빨라졌고 민첩하게 경영할 수 있게 되었다.

 

글락소는 미국에 자리를 잡은 후에도 신속하게 시장을 개척해 나갔다. 1981 년, 미국 글락소는 현지 업계 순위 10 위인 스위스의 로슈사와 합작, 로슈의 업무 대리와 판매망을 이용해 약품들을 판매했다.

 

당시, 적지 않은 기업들이 자기의 약품 상표권을 다른 회사에 빌려 주고, 그들이 판매를 책임지게 하여, 10 년 또는 몇 년의 계약을 맺고는 이익을 서로 나누는 방식을 채택했다. 그러나 글락소는 수직 조합의 경영 방식을 채택하여, 원료 생산에서부터 연구개발, 제품생산 및 출하와 판매를 일관해서 책임지는 시스템으로, 대리상에게 위탁하지 않았다. 그 결과 제품의 품질과 정보의 적기 피드백이 보장되었다. 그들의 “잔탁”은 바로 이렇게 미국의 “스타 약품”이 되었던 것이다.

 

“호랑이 굴에 들어 가지 않고는 어찌 호랑이를 잡겠는가.” 영국의 글락소 제약은 미국 시장에 진출할 때, 현지 회사를 “합병”하는 절묘한 계책을 채택하였으니 이는 마치 탐지기를 미국 시장에 설치한 것과 같은 효과를 가져 왔던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미국 약품 시장의 일거수 일투족이 글락소에 의해 모두 파악되어 당사 제품이 미국 시장을 점령하는데 필요한 정보를 제공받을 수 있었다.

 

영국 글락소는 시장 예측 조사를 중시함으로써, 미국 시장의 핵심 사항을 장악한 후 차례대로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 가, 일거에 수위 자리를 차지하였다. 그 회사의 “반객위주” 전략은 우리가 참고할 점이 많다고 하겠다.

 

<36계>와 처세-진주 채집한 사람이 지혜로 탐욕스런 부인을 이기다

 

이 계의 원 뜻은 주인이 손님을 접대할 수 없어 오히려 손님의 접대를 받는다는 것이다. 이 계를 처세에서 운용하는 것은, 바로 상대의 약점을 잡아 내어, 주도권을 쟁취해 실패를 승리로 바꾸는 것을 의미한다. 주의해야

 

할 점은, 이 계를 사용할 때에는 절대로 급하게 이루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신중하게 상대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하여야 하며, 객관적인 상황을 정확하게 판단하여 시기가 완전히 무르익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손을 써야 만이 주객을 전도시켜 성공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이전, 한 가난한 사람이 진주를 채집하러 아라비아만에 왔다. 그는 위험을 두려워하지 않고 깊은 곳으로 뛰어 들어 많은 진주를 채집해 상당한 돈을 벌게 되었다. 그는 모든 수입을 금화로 바꾸어 작은 가방에 넣어 몸에 휴대하고 다녔다. 그는 길가에 있는 어느 빈 방을 빌려 투숙했는데, 자기 전에 그만 마음이 흥분되어 금화를 하나 하나 다시 세었다. 그러나 그의 이 모든 행동을 집 주인은 모두 보고 있었다. 아이가 몇 명 딸린 과부인 집 주인은 탐욕스럽게 문틈으로 이 장면을 보고는그 금화를 자기 손에 넣어야겠다고 결심했다.

 

이튿날, 그 사람이 길을 떠나기 위해 문을 나서려 할 때, 그 과부가 옷을 붙잡고 말했다: “아이들 아빠, 가면 안 됩니다. 당신이 집안의 돈을 다 가지고 떠나 버리면, 나와 어린 얘들은 어떻게 살아 간단 말이오!”

 

진주 채집인은 크게 화가 나 과부가 치근대는 것을 뿌리치려 했다. 그러나 과부는 의복을 죽을 힘을 다해 붙잡고 놓아 주지를 않았다. 지나 가던 사람들이 그들을 둘러 싸고 구경을 하다가, 각자 말하는 것이 다 일리가 있다면서, 그러지 말고 두 사람이 법관에게 가라고 권했다. 법관 앞에서 과부는 자신의 남편이 집안에 있는 금화 모두를 갖고 먼 타관으로 가, 자기와 아이들을 돌보지 않으려 한다고 호소했다. 진주 채집인은 말도 되지 않는 소리라면서 과부의 아이들을 불러 증인을 서게 해 달라고 법관에게 요청했다. 하지만 아이들은 전혀 생각지도 않게 그를 보자 아빠라고 부르는 것이었다! 그러니 그는 울지도 웃을 수도 없었다. 법관은 진주 채집인이 바로 아이들의 아빠라고 인정하고는 금화를 모두 과부에게 돌려 주라고 판시하면서 더구나 다음과 같이 덧붙여 말했다: “당신이 떠나지 않으면 그녀와 사이 좋게 지내면 될 것이고, 만약 떠나게 되면 한 푼의 금화도 가지고 가서는 아니 될 것이다.”

 

진주 채집인은 수 년에 걸친 수고와 노력이 허사가 되어 마음이 견디기 어려웠다. 그는 절망하여 길에서 헤매였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우연히 한 노인을 만나게 되었다. 노인은 진주 채집인의 하소연을 듣고 나서 한 가지 계책을 다음과 일러 주었다: “당신은 법관을 찾아가, 당신이 두 아이들을 데리고 떠나 가기로 결심했는데 아이들 엄마가 들어 주지 않으니 법관께서 판결해 주십시오.”

 

진주 채집인은 법관을 만나 노인이 일러 준대로 얘기하자, 과연 법관은 그가 두 아이들을 데리고 떠나도록 판결했다. 과부는 당황하여 어쩔 줄을 몰랐지만, 이제 와서 진주 채집인이 아이들의 아버지가 아니라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다른 방법이 없었다.

 

법정을 나서자, 과부는 금화를 모두 그에게 돌려 줄 테니 아이들을 돌려 달라고 진주 채집인에게 애원하였다. 그거야 말로 진주 채집인이 바라던 바였다.

 

진주 채집인은 노인의 계책을 받아 들여, 상대방의 계략을 역이용하여 역습을 가함으로써, 피동에서 주동으로 바뀌었으니, 바로 “남편”의 신분으로 욕심많은 과부를 제압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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