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병법

제31계 미인계 美人計

한림정(신방현) 2018. 6. 25. 13:41



 




 
 
  

미인계 美人計

미인을 미끼로 하여 남을 꾀는 계략을 말한다.

  ’세력이 강한 적장의 마음을  아름다운 여인을 이용해 교묘히 꾀어내는 수법이다.’
만일 상대가 영특한 사람이라면 계책을 세워 의욕을 상실케 한다. 

우두머리와 부하들의 의욕을 꺾으면 상대는 저절로  무너지고 말 것이다.

이 책략의  핵심은 상대의 마음을 딴 곳으로  돌리는 데 있다.

상대의 마음을 빼앗으려면 절세의 미녀라야 가능하다.

 

第六套 敗戰計

第三十壹計 美人計

兵強者,攻其將。將智者,伐其情。

將弱兵頹,其勢自萎。利用禦寇,順相保也

譯:兵力強大的,就要攻打他的將帥;將帥明智的,就打擊他的情緒。

將帥鬥誌衰弱、部隊士氣消沈,他的氣勢必定自行萎縮。

《易經•漸》卦說:利用敵人內部的嚴重弱點來控制敵人,

可以有把握地保存自己的實力。

 

 

Chapter 6: Desperate Stratagems

(敗戰計)

The beauty trap (Honeypot)

(美人計/美人计, Měi rén jì)

Send your enemy beautiful women to cause discord within his camp. This strategy can work on three levels. First, the ruler becomes so enamoured with the beauty that he neglects his duties and allows his vigilance to wane. Second, other males at court will begin to display aggressive behaviour that inflames minor differences hindering co-operation and destroying morale. Third, other females at court, motivated by jealousy and envy, begin to plot intrigues further exacerbating the situation.

 

(패전계) 31계 미인계 (美人計) - 미인을 이용해 유인하라

 

美人計 兵强者, 攻其將. 將智者,

伐其情. 將弱兵頹, 其勢自萎.

利用御寇, 順相保也.

 

미인을 미끼로 삼아 적을 유인하는 계책이다. 적이 강하면 적장의 공략 방법을 찾아야 한다. 적장이 지혜로우면 심리적으로 접근해 그의 투지를 좌절시켜야만 한다. 적장의 투지가 약해지면 병사들의 사기도 땅에 떨어지고, 전투력 또한 위축된다. 이는 “남이 둘 사이를 이간하지 못하도록 활용함으로써 화목하게 지내면서 서로 보호한다”는 뜻을 지닌 〈점괘〉의 괘사를 역으로 활용한 것이다.

 

[해설]

 

장지자(將智者)는 뛰어난 지략을 지난 자를 뜻하는 말로 곧 지장(智將)을 의미한다. 벌기정(伐其情)은 적의 심리적 약점을 공략한다는 뜻이다. 장약병퇴(將弱兵頹)의 ‘퇴’는 쇠약해질 쇠(衰)의 의미다. 기세나 상태가 쇠하여 전보다 못해지는 쇠퇴(衰頹)와 같다. 쇠퇴(衰退)도 같은 뜻이다. 기세자위(其勢自萎)가 이를 의미한다. ‘위’는 시들어 말라버린다는 뜻으로 위축(萎縮)의 의미다. 〈점괘〉의 ‘이용어구(利用御寇), 순상보야(順相保也)’ 괘사는 적의 약점을 이용해 적을 제어하면서 아군의 전력을 보전할 수 있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미인계는 미인을 마치 낚시의 미끼처럼 활용해 적장을 유인할 때 사용하는 계책이다. 미인계의 출전에 대해서도 여러 이론이 있다. 《서경》과 《춘추좌전》 및 《사기》 등에 나오듯이 폭군의 뒤에는 반드시 나라를 기울게 만든 미인이 나온다. 하나라 걸왕 때의 요녀 말희(妺喜)를 비롯해 은나라 주왕 때의 요녀 달기(妲己), 주유왕의 후궁 포사(褒姒) 등이 그들이다. 모두 미인계로 바쳐진 여인들이다. 그러나 이는 모두 전설이어서 액면 그대로 믿을 수 없다. 병법 차원에서 볼 때 《육도》 〈문벌〉에서 찾는 것이 가장 그럴듯하다. 해당 대목이다.

 

“적국의 간신을 양성해 그 군주를 미혹하게 만드는 방법이 있다. 미녀와 음탕한 음악을 진헌해 그 군주의 뜻을 잠식하고, 좋은 경주용 개와 말을 헌상해 그 군주의 심신을 피로하게 만들고, 때론 존귀한 칭호와 권세 등으로 유혹한다. 연후에 유리한 때가 오면 천하 사람과 더불어 그를 토벌한다.”

 

《한비자》 〈내저설 하〉에도 미인계를 언급한 대목이 나온다.

 

“진헌공이 우나라와 괵나라를 토벌하고자 했다. 굴 땅에서 나는 명마와 수극 땅에서 나는 옥, 여악(女樂) 16명을 보내 정사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미인계의 유형은 매우 다양하나 미색을 이용해 적을 유혹하고 무사안일과 향락을 젖게 만든 뒤 기회를 봐 급습을 가해 거꾸러뜨린다는 점에서는 똑같다. 《삼국연의》에 나오듯이 왕윤이 초선을 이용해 여포를 격동시킨 뒤 여포로 하여금 동탁을 척살케 했던 것도 미인계의 일환이다.

 

중국의 4대 미인

(서시.왕소군.초선.양귀비)

 

서시(시쓰, 西施)

 


 

서시교

서시(시쓰, 西施, 생년 미상)는 중국의 유명한 고대 중국 사대 미녀로서 본명은 施夷光 이다. 중국에서는 西子라고도 한다. 기원전 5세기경 춘추시대 말기 사람이다. 현재 저장 성 사오싱 주지 시 출신이다.

 

월 왕 구천이 오 왕 부차와 전쟁에서 패배하자 월 왕 구천의 참모인 범려의 전략에 따라 패전을 처리하려고 오 왕 부차에게 헌납하는 공물로서 오 왕 부차의 여자가 된다. 서시에게 빠진 부차는 월을 끝까지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던 오자서를 죽이면서까지 월 경계에 소홀하고 국력을 키운 월에 결국 패망한다.

 

오가 패망한 뒤 서시는 월 왕 구천의 후궁이 되어 총애받지만 구천의 정부인인 월부인에게 비밀리에 제거당한다.

 

중국의 사가들은 오가 망한 후 서시의 일생을 놓고 많이 만든 설 중 서시는 범려의 연인으로 오가 망한 후 그 남자가 월을 떠날때 비밀리에 데리고 갔다는 설이 사가들에게 최다 사랑받았다.

 

다른 설로는 월이 오를 멸한 후 월 왕 구천이 서시를 궁으로 부르지만 범려가 그 여자와 강에서 만나 그 여자를 설득하고 서시가 강에서 자살했다는 설이 있고 그외에 오가 망할때 분노한 오의 백성이 서시의 목을 잘랐다는 설도 있지만 그 모두 부정확하다.

 

저장 성 항저우의 중심에 서호가 있다. 중국인들은 서시를 西子라고 부르는데 서시처럼 아름다운 호수라는 뜻이 있다.

 

서시는 관련된 여러 가지 고사를 대표할 정도로 전형이 될 만한 특징이 있는 것 중의 하나가 沈魚이다. 어릴 때부터 천성이 곱고 용모가 아름다워 항상 부러움을 샀는데 하루는 강가에서 빨래하다가 그 여자의 아름다운 모습이 맑은 강물에 비췄다. 이때 물고기가 물에 비친 아름다운 서시의 모습에 도취되어 헤엄치는 것도 잊어버리고 강바닥으로 가라앉았다고 해서 지어진 고사이다. 현재 서시의 출생지라고 알려진 저장 성의 제기시에는 서시가 빨래하던 浣紗 완사라는 곳이 전설하는 그곳이라면서 관광지로 지정되었다.

 

장자에는 效嚬의 고사가 전래하는데 속 병이 있던, 서시는 이마를 찌푸리고 걸었는데 이 마을의 추녀도 잔뜩 찌푸린 채 따라하다가 마을 사람들이 두문불출하고 그 추녀는 외면받았다는 고사이다.

 

왕소군(王昭君)

 


 

 

 

왕소군(王昭君, 기원전 1세기)은 흉노의 호한야 선우(呼韓邪單于), 복주누약제 선우(復株累若鞮單于)의 연지(선우의 처)로, 본래 한나라 원제의 궁녀였다. 이름은 장(嬙, 출전은 한서)이다. 성을 왕, 자를 소군이라고 하여 보통 왕소군이라고 불리며 후일 사마소(司馬昭)의 휘(諱)를 피하여 명비(明妃), 왕명군(王明君) 등으로도 일컬어졌다. 형주 남군(현재의 호북성 사시) 출신으로 양귀비, 서시, 초선과 함께 고대 중국 사대 미인의 한 사람에 손꼽힌다.

 

전한의 원제 시대, 흉노의 호한야 선우가 한나라의 여성을 연지로 달라고 해, 왕소군이 선택되어 그의 장남을 낳았다. (당시의 상황으로 보아 변방의 세력을 달래기 위해 보냈다는 설도 있다.) 이후 호한야 선우가 사망하자, 당시 흉노의 관습대로 아들 복주누약제 선우의 처가 되어 둘째 딸을 낳았다. 한족은 부친의 처첩을 아들이 물려받는 것을 꺼려하여, 이것이 왕소군의 비극으로 민간에 전승되었다. 황량한 초원지대가 대부분이었던 흉노의 땅에서, 왕소군은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고향땅을 그리며 시를 남겼는데, 그 시구 중에 "봄은 왔으나 봄같지 않구나(春來不似春)"라는 구절은 흉노 땅의 봄을 맞이했음에도 고향 땅의 봄같지 않아 더욱 사무치게 고향이 그립다는 그녀의 애절한 심정이 잘 나타나 있다. 지금도 이 시구인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은 그리움의 인용구로 널리 쓰이고 있다. 이후 72세가 되던 해에 병을 얻어 돌무덤에 안장되었는데, 사람들은 그 무덤을 일컬어 소군묘(昭君墓) 혹은 청총(靑塚)이라고 부른다.

 

《서경잡기》에 따르면, 원제는 흉노에게 보내는 여성으로 후궁 중 가장 추한 여성으로 선택하기 위해 초상화에 그려진 가장 보기 흉한 여성을 선택한 것이다. 초상화를 그리던 장인에게 뇌물을 주지 않았던, 왕소군은 가장 보기 흉하게 그려져 있었기 때문에 왕소군이 선택된 것이다. 황제에게 이별을 알리기 위해 마련된 자리에서 원제는 왕소군의 아름다움에 정신을 빼앗겼지만, 어쩔 수 없이 보내고 말았고 격노한 원제는 화상의 목을 쳤다고 한다. 그 후 호한야 선우가 죽고, 횽노의 관습대로 복주누약제 선우의 처가 되었다. 이러한 이야기는 후한 시대의 《서경잡기》(西京雜記)에 실렸던 것이, 진나라 때 왕명군사(王明君辭), 원의 마치원의 잡극 한궁추(漢宮秋) 등으로 작품화 되었다

 

초선(貂蟬)

 

초선(貂蟬)175년~199년(소설상 나이)은 서시, 왕소군, 양귀비와 함께 중국의 4대 미인 가운데 한 사람이다.

 

《삼국지연의》에서 왕윤의 수양딸로 등장해 동탁과 여포 사이를 이간질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는 여포가 동탁의 시녀와 염문을 가졌다는 정사의 기록과 왕윤이 여포를 부추겨 동탁을 죽이게 했다는 사실을 연의에서 각색한 것이다.

 

‘초선(貂蟬)’이란 이름은 담비의 꼬리와 매미의 날개로 만든 당상관 전용 관모인 초선관(貂蟬冠)을 관리하는 시녀의 관직명이다.(한나라 관모 일람(zh) 참조.) 동탁이 상국에 올랐기 때문에 그에따라 동탁의 초선관을 관리하는 시녀가 할당되었다.

 

《삼국지》에서 초선의 모델

 

초선은 비록 삼국지 상에서는 가공의 인물이지만 이에 해당되는 실존인물은 있었다. 정사 후한서 여포전에 의하면 궁중에서는 초선관[1]이라는 관(冠)을 관리하는 시녀가 있었는데 이 시녀의 관직 이름이 초선이였다. 여포는 동탁의 초선관을 관리하는 초선과 밀통을 하고 있는데 계속 밀통하다가 동탁이 이를 알자 여포에게 수극을 던지며 둘의 연애를 반대했다고 나온다. 이를 이용하여 왕윤이 여포를 적극적으로 설득하여 결국 동탁을 죽이도록 만든다. 정사 후한서 여포전에 의하면 여포와 밀애를 한 이 동탁의 시녀는 직책이 초선이였으며 이름이 알려진 바 없으며 왕윤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다만 나관중은 이 사실에 대해 삼국지연의를 집필할 때 동탁의 시녀 대신 왕윤의 양녀라는 설정으로 변경하고 초선이라는 관직 이름을 이 양녀의 개인 이름으로 고쳐서 묘사했다.

 

초선의 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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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6월 서천(西川)기자역 근처에서 한나라 시대의 무덤이 발굴되었는데 그안에 사람의 다리뼈와 머리카락 외에 '여인은 초선의 장녀로 어미를 따라 촉으로 들어갔다 라는 글과 `초선은 왕윤의 가기(노래와 연주를 하는 종)로 염제를따라 촉으로 들어왔다' 라는 글이 새겨진 묘비가 발굴되었고 고고학자들은 이 무덤이 초선의 것인지 아직 밝혀내지 못하고 있지만 묘비에 새겨진 글을 통해 사람들은 이 무덤의 주인공은 초선이며 그녀가 실제로 존재한다고 믿고 있다.

 

《삼국지연의》 이전의 초선

 

초선은 《삼국지연의》에 처음 등장하는 인물이 아니며, 그 이전에도 다른 작품에서 등장하였다.

원나라 때의 잡극인 《연환계》에서 초선은 흔주 목이촌 임앙의 딸인 임홍창(林紅昌)으로 영제 때 궁녀로 선발되었다가 정건양(丁建陽 = 정원.)에게 하사되었다고 나온다. 그때 여포를 만나 그 아내가 되었고, 황건적의 난이 일어나 헤어졌다가 나중에 왕윤으로 말미암아 여포와 재회한다. 또한 이 잡극에서는 초선의 뜻을 “담비의 꼬리와 매미의 날개”라고 풀고 있다.

원나라 때의 소설인 《삼국지평화》에서 초선은 본래 임씨이고, 어릴 때의 이름이 초선이며, 남편은 여포라고 하였다. 임조부에 있을 때부터 여포와 떨어지게 되었다고 나온다. 이 소설에서는 왕윤이 동탁을 청해 초선을 바치겠다고 한 뒤 여포를 초대하여 부부를 만나게 하여 갈등을 일으킨다.

 

대체로 《삼국지연의》 이전의 작품에서는 초선은 동탁이나 왕윤을 만나기 이전부터 이미 여포의 아내였다는 설정이 주류를 이룬다.

 

《삼국지연의》의 초선

 

초선과 관련하여 《삼국지연의》에서는 다음과 같이 나온다.

사도(司徒) 왕윤(王允)의 가기이다. 일설에는 양녀라고도 한다. 동탁(童卓)이 폭정을 잡을 당시 왕윤은 조조(曹操)에게 칠성검(七星劍)을 주며 동탁 암살을 꾀했지만 실패를 하였고, 초선의 제의로, 또는 왕윤의 명으로 동탁과 여포(呂布)를 이간질시키는 연환계를 펼쳐 동탁을 죽인다.

 

이 《삼국지연의》에 나타나는 초선의 모습은 크게 두 모습인데, 하나는 대의명분을 위해 목숨까지 바치는 충의지사이며, 다른 하나는 남편의 앞길을 가로막는 여인(또는 여자의 치마폭에 싸여 대사를 그르치는 남편의 아내)라는 모습이다. 삼국지 연의에서 초선은 여포와 정을 통한 동탁의 개인 시녀를 기본 베이스로 만들어진 인물로 나관중은 이 여인에게 초선이라는 이름을 부여한 후 동탁의 시녀가 아닌 왕윤의 양녀로 묘사했다.

 

충의지사

 

충의지사인 초선의 모습에는 유약한 여인이 모습과 마음이 강직한 지사의 모습을 함께 가지고 있다.

왕윤이 동탁을 제거하지 못해 애를 태울 때 “소용이 된다면 만 번 죽어도 사양하지 않겠다”라는 요지의 말을 한다. 왕윤이 초선의 말에 답하자 초선은 다시 말하기를 “어찌 대감의 일을 위해 죽음을 두려워 하겠느냐?”라는 요지의 말을 한다.

동탁이 죽은 뒤 여포가 미오성을 공격하고 초선을 찾기에 혈안이 되었다는 이야기로 《삼국지연의》에서 이유가 여포에게 작은 칼을 던져 죽이려 했으나, 결국 초선이 죽었다고 한다.

 

남편의 대사를 그르치는 여인

 

초선은 남편의 대사를 그르치는 여인으로 등장하는데, 이에 대해 초선보다는 여포가 여자의 치마폭에 싸여 대사를 그르치는 사람임을 나타내는 문학적 장치라고 해석하는 사람이 많다. 한편으로는 초선이 실존 인물이 아니기에 서로 상반된 모습으로 나타난다고 보기도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초선은 철저히 연약하고 이기적인 여자로서 그려진다. 이 때문에 일부 삼국지의 저자들은 이 부분의 초선이 여포가 동탁을 죽일 무렵에 등장한 초선과 별개의 인물이며 '가짜 초선'이라고 묘사하기까지도 한다.

여포가 조조의 공격을 받고 성에 고립되었을 때 성을 사수할 것을 고집하자, 진궁이 나서서 고립되면 더욱 위험하니 성 밖에 나가서 지친 조조군을 공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일을 여포가 엄씨와 초선에게 말하자, 초선이 “우리를 버리고 함부로 군사를 일으키는 일이 없도록 해달라.”라고 애원한다.

 

다른 작품의 초선

 

초선은 가상 인물이기 때문에 여러 작품과 야사에서 새롭게 다루어지고 있다.

동탁이 죽은 직후, 곧바로 자살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 때문에 연의에서는 초선이라는 이름도, 외모도 똑같은 다른 여인을 여포의 부인으로 다시 나타나게 해야만 했다.

여포 사후, 비구니가 되었다가 이전에 본 관우에게 반하여 관우를 끝까지 모셨다는 얘기도 있다.

관우을 처음 봤을 때 서로 반했다.

고우영 삼국지에서는 여포를 최대한 좋지 않은 쪽으로 몰고 가기 위해 여포가 아닌 왕윤과 사랑하는 사이로 묘사되며 자결한 후 그 시체가 여포에 의해 강간당한 것으로 묘사했다.

관우의 연인이 되었지만 관우의 손에 죽었다고 하기도 한다.

 

역사 속의 초선

 

정사 《삼국지》에는 초선이라는 이름은 나오지 않고, 그저 동탁의 “시비”라고만 하고 있다.

원문 : 布與卓侍婢私通

해석 : 여포가 (동탁의) 시비와 사사로이 정을 통했다.

 

원래 초선이라는 이름은 사람의 이름이 아니라 당상관의 관모를 관리하는 시녀의 관직 이름인 것이고 그 본명을 아는 이는 아무도 없다. 실존하긴 실존했지만 초선이라는 이름만은 허구다.

 

김운회 교수는 동탁의 시비를 “초선”이라고 가정하고 다음과 같이 정사 《삼국지》와 다른 작품을 비교하여 해석했다.

1.초선의 직업은 아마도 이전 영제의 일반 궁녀였을 것이다. 《연환계》의 해석을 바탕으로 고관대작의 관을 관리했으리라 추측했다(담비의 꼬리와 매미의 날개는 “초선관(貂蟬冠)”이라는 실제로 존재하는 당상관 전용 관모를 장식하는 물건이다).

 

2.초선의 미모는 아름답지만, 중국의 4대 미인에 들만큼 되지는 못했을 것이다. 초선은 황제가 바뀐 뒤에도 궁에 남았으므로 후궁은 아닌 일반 궁녀였고, 이를 바탕으로 썩 아름답다고는 말하기 어렵다고 보았다. 중국의 4대 미인 가운데 초선을 표현하는 말이었던 “달이 부끄러워 얼굴을 가릴” 만큼 아름답지는 않았다. 또한 유목민족이었던 여포는 병주 출신으로 전장에 오래 있었고, 유목 민족은 미모보다는 건강을 먼저 보기 때문에 더욱 미모와는 관련이 없었으리라 보았다. 뒤에 다시 설명하기를 미인계가 유목민족인 여포에게는 그다지 유효한 책략이 아니었음을 밝히고 있다.

 

3.초선은 《삼국지연의》에 나타난 모습처럼 유약하지는 않았다고 보았다. 동탁 소유의 시비가 다른 남자와 정을 통한 일을 “죽을 죄”라고 하면서, 죽음을 무릅쓰고 여포와 사랑한 정열적인 여인으로 해석했다. 이는 여포도 마찬가지로 서로 목숨 걸고 사랑한 사이라고 보았다.

 

4.초선은 동탁과는 정을 통하지 않았으리라 여겼다. 동탁의 애첩이었다면 수많은 감시자가 따라붙었을 테고, 그것까지 피해서 여포와 정을 통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초선은 동탁에게 미모를 이용해서 동탁을 홀렸다기 보다는 동탁의 근처에서 동탁의 수발을 들며 동탁을 감시하는 역할을 했을 가능성이 더 크다.

 

 

양귀비(楊貴妃)

 







양귀비(楊貴妃, 719년 6월 26일 ~ 756년 7월 15일)는 李隆基(이융기)의 후궁이자 식부이다. 성은 楊(양)이고 명은 玉環(옥환)이며, 귀비는 황비로 순위를 나타내는 칭호이다. 이융기에게 총애받았지만, 과도해 안사의 난을 일으키는 원인이 돼서 경국지색이라고도 부른다.

 

양옥환(楊玉環)은 719년 이융기 집권 초기에 쓰촨성 蜀州(촉주)(현 두장옌 시)에서 태어나 蒲州(포주)의 永樂(영락)(현 산서성 융지 시)에서 자랐다. 양옥환의 고조부인 楊汪(양왕)은 楊廣(양광)이 통치하던 시대에 중신이었다. 수나라의 멸망 이후 정나라의 왕세충을 모시고 살았다. 621년 당에 의해 왕세충이 패배할 때 양왕도 살해됐다. 양왕은 원래 산서성 화현(현 웨이난 시) 출신이었는데 양왕 일가는 용락(현 윈청 시)에 이주해 기반을 다졌다.

 

양옥환의 부친 楊玄琰(양현염)은 蜀州(촉주)에서 호구를 조사하는 하급관리였고 양현염의 가족은 양현염과 촉주로 이사했다. 양현염은 아들이 없었고 양옥환과 양옥환의 언니를 세 명 낳았다. 양현염은 양옥환이 어렸을 때 죽어서 양옥환은 하남성 낙양에서 하급관리로서 근무하던 숙부 楊玄璬(양현교) 슬하에서 자랐다. 숙부는 가정교육에 엄격해 사서삼경을 가르치고 많은 시문을 외우게 했는데 총명했던 양옥환은 숙부 집에 있던 기생 출신 하녀에게서 胡旋舞(호선무)를 몰래 배웠다.[1] 당시 감찰어사를 맡던 양옥환의 친척 楊愼名(양신명)과 양신명의 처는 양옥환을 자신들의 집에서 열리는 연회에 자주 초청했는데 연회의 손님들 중에는 李顯(이현)의 딸 장녕공주도 있었다.[2] 장녕공주의 첫 번째 남편 양신교는 본래 양옥환과 같은 홍농 양씨 출신이었는데[3] 마침 장녕공주와 양신교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양회가 이융기가 가장 총애하는 딸 咸宜公主(함의공주)와 혼인하게 되었다. 장녕공주는 이 혼례에서 빼어난 미모로 소문난 양옥환에게 들러리를 부탁했고 양옥환은 함의공주와 가까이 지내게 되었다. 함의공주처럼 惠妃 武氏[혜비 무씨]의 소생이었던 제18 황자 李瑁(이모)는 양옥환의 미모에 매료됐고 함의공주의 주선으로 무씨도 양옥환을 마음에 들어 해 이융기에게 양옥환을 이모의 비로 달라고 청했다. 무씨는 武曌(무조)의 조카라는 이유로 황후에는 봉해지지 못했지만 이융기에게서 가장 큰 총애받는 후궁이었기에 이융기는 무씨가 한 부탁을 들어주었다.

 

입궁과 수도

 

733년 개원 23년 16세 양옥환은 이모와 혼인했다. 이모는 무씨와 이임보의 후원으로 황태자에 추천됐으나 무씨 사망 후 익년 환관 高力士(고력사)의 추천으로 李璵(이여)가 황태자로 책봉됐다.

 

무씨 사망 후 실의에 빠진 이융기를 위로하고자 高力士(고력사)는 무씨와 닮은 양옥환이 이모와 華淸池(화청지)로 피서한다는 사실을 알고 이융기에게 화청지로 가라고 권했다.[5] 그 날 이후로 무씨를 닮은 미모에 시와 노래까지 능한 양옥환에게 감정이 생긴 이융기는 高力士(고력사)와 이 일을 상의했다. 高力士(고력사)는 양옥환을 만나 이융기의 의중을 암시했고 이융기는 양옥환을 화산의 도사로 출가시켜 아들인 이모에게서 떼어놓고 궁내에 도교 사원인 太眞宮(태진궁)을 짓고 양옥환을 다시 이곳을 관리하는 女冠(여관)으로서 불러들였다. 이때 양옥환은 22세, 이융기는 57세였다.

 

745년 양옥환이 27세에 귀비가 되면서, 당은 서서히 끝자락을 달리게 된다. 이융기가 채위한 초기에는 개원의 치를 이룩할 정도로 어질게 정치했지만, 양옥환이 등장한 후 양옥환 일가의 전횡이 시작되면서, 당은 힘을 점점 잃게 된다. 양옥환의 세 오빠에게 모두 높은 벼슬을 주었고 언니 세 명을 국부인에 책명할 정도로 이융기는 양옥환을 총애했다. 그중 양옥환의 사촌 오빠인 양소는 이융기에게 이름 '국충'을 하사받고 승상까지 올라 국정을 전횡한 인물로서 환관 高力士(고력사)와 담합해 이융기를 정치에서 관심을 멀어지게 한다. 양옥환에게 셋째 언니인 괵국부인 양옥쟁이 있었는데 미모가 아름다웠다. 이융기는 괵국부인을 보고 반해 양옥환에게 입궁시키라고 명하였는데 양옥환은 질투해서이 명령을 거절했고 사이가 점점 멀어지게 되어 이융기는 양옥환을 퇴궁하게 했는데 高力士(고력사)와 양국충이 두 사람을 화해하게끔 해서 두 사람은 사이가 다시 좋아졌다.

 

안사의 난과 최후

 

이 부분의 본문은 안사의 난입니다.

 

747년 절도사 안녹산이 등장해, 양옥환은 안녹산과 친해진다. 새로운 권력자의 등장에 위기를 느낀 양국충은 견제하는데 이것은 안사의 난이 일어나 당이 멸망하는 원인이 된다.

 

756년 지덕 원년 가서한은 안녹산에게 대패하면서 잡혔고 동관도 함락되었다. 이융기는 수도 장안을 빠져 나가, 촉(현 쓰촨성)으로 피난했고 양옥환, 양국충, 高力士(고력사), 李亨(이형)도 동행했다.

 

756년 7월 15일 섬서성 馬嵬(마외)에 이르러, 전란 원인이 된 양국충을 증오하던 陳玄禮(진현례)와 병사들은 양국충과 한국 부인들을 죽였으며 이융기에게 ‘도적의 근본’인 양옥환을 죽이라고 요구했다. 이융기는 "양옥환은 심궁에 있었고 양국충의 모반과 무관하다"고 옹호했지만, 高力士(고력사)의 진언에 의해 양옥환에게 사세부득이 자살을 명했다. 高力士(고력사)에 의해 양옥환은 목매달아 죽었다.

 

이융기는 양옥환을 안장하고 장안에 돌아간 후 이장을 명했지만, 예부시랑 이규가 반대해서 뜻을 이루지 못했으나 이융기는 내시에게 은밀히 이장을 명했다.

 

 

백화점의 문화사-근대의 탄생과 욕망의 시공간

미인계로 패가망신한 '동아백화점'

박흥식이 ㈜화신상회를 설립한 다음 해인 1932년 1월, 화신상회의 인접지에 '동아백화점'이 개설된다. 일찍부터 종로 2가에서 '동아부인상회'를 경영하던 최남이 화신상회와 동일한 형태의 백화점을 개설한 것이다. 동아백화점이 들어선 4층 건물은 민규식에 의해 지어진 것으로, 그의 친족들이 1층에 시계포와 금은상을 차려 놓고 있었으므로, 동아백화점은 부득이 2층 이상만 임대해 사용하였다. 따라서 동아백화점은 1층 일부에 가까스로 쇼윈도를 설치하는 약점이 있었지만, 새로운 근대식 빌딩에 규모도 만만치 않았다.

 

동아백화점이 등장하면서 종로 상권은 한국인에 의한 양대 백화점이 자웅을 겨루는 모양이 되었다. 그렇다면 초기의 국내 백화점들은 어떤 식으로 경쟁을 했는지, 당시 양 백화점이 취한 경쟁적인 영업전략을 잠시 살펴보자.

 

동아백화점은 미모의 여직원을 모집하여 이들을 점두에 세워놓고 고객유치에 열을 올렸다. 국내 최초 백화점 걸의 등장이었다. 미인계로 시작한 동아백화점의 전략은 효과가 있는 듯했다. 양장에 늘씬한 몸매를 자랑하는 미인들이 던지는 화제성으로 인해 많은 손님들이 몰려들었다.

 

여기에 대해 화신상회는 봉사제일주의, 신용제일주의로 맞섰다. 최고의 상품을 가장 싸게 구입하여, 고객들에게 최저가격으로 판매한다는 원론적인 전략이었다. 이러한 영업전략에 따라 화신상회는 일본 오사카에 지하 1층, 지상 3층의 빌딩을 임대해 매입부를 설치하고, 각종 상품을 제조원으로부터 공장도 가격으로 직수입했다. 한편 본사에는 상품경리과를 신설하고 레지스터기를 비치하여 그날의 매출을 신속히 파악토록 하였다.

 

처음 몇 달간은 양대 백화점의 경쟁이 점점 심화되어 좀처럼 승부가 판가름 날 것 같지 않아서, 날이 갈수록 양사는 심한 출혈을 강요하고 있었다. 한마디로 자본과 두뇌 그리고 끈기의 싸움이었다. 그러나 극렬했던 이 백병전은 장기화되리라던 예상과 달리 불과 6개월 만에 종식되었다. 동아백화점이 백기를 든 것이었다. 동아백화점이 그토록 빨리 백기를 든 것은 몇 가지의 이유가 있어서였다.

 

첫째는 최남 사장의 경영방식이 주먹구구식의 비과학적인 점에 있었고, 두 번째는 미인계 전략의 실패였다. 기발한 발상이라고 시도했던 미인계의 운영에 있어서, 경영자의 감독 소홀을 틈탄 관리자가 오히려 여직원 여러 명을 농락하여 그 추행이 세간에 알려지게 된 것이다. 사건이 신문에 크게 보도되면서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켜, 백화점은 신의를 잃게 되었다. 세 번째는 화신상회가 시행한, 현금교환이 가능한 '답례용 상품권증정 감사대매출'이 공전의 성황을 이루어 동아백화점을 궁지로 몰아넣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동아백화점은 ㈜화신상회에게 상호와 상품 및 경영권 일체를 양도하였다. 따라서 화신상회와 동아백화점의 양 건물을 잇는 한국 초유의 육교가 가설되어 경성의 새로운 명물로 등장하였고, 고객들은 자유로이 양 건물을 왕래할 수 있게 되었다. 이로써 화신상회는 이름 그대로 한국인 유일의 대형백화점으로 군림하며, 평양과 진남포에 제2, 제3의 백화점을 개설하게 되었다.

 

 

감부인과 미부인의 진실

 

『삼국지연의』에선 유비의 전기(前期)에 부인이 두 사람 나오는데, 그 첫 번째는 감부인(甘夫人)이요, 두 번째는 미부인(縻夫人)이다. 원술을 공략하기 위해 유비와 관우가 대군을 이끌고 나가고 장비가 서주의 방위를 책임진다. 그러나 장비가 술에 만취한 상태로 여포의 공격을 받아 서주를 잃자, 유비의 두 부인은 여포에게 붙잡혔다가 유비의 품에 돌아온다.

 

훗날 조조가 하비를 공격하고 관우가 조조에게 세 가지 조건을 걸고 항복할 때, 유비의 두 부인도 조조의 수중에 떨어진다. 그 후 두 부인을 보호한 관우가 다섯 관문을 지나며 여섯 장수의 목을 베는 험난한 과정을 거쳐 비로소 유비와 재회한다. 그리고 유비가 형주의 유표에게 몸을 의탁하고 있던 건안 12년에는 감부인이 아두(훗날의 유선)를 낳는다. 다음해 조조의 대군이 형주를 공격하자 유비와 두 부인은 또다시 뿔뿔이 헤어지게 된다.

 

당시 유비 가족의 보호 임무를 맡은 조운이 유비의 두 부인을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다가 다행히 감부인은 무사히 구한다. 그러나 중상을 입은 미부인은 아두를 조운에게 맡기고 스스로 우물에 몸을 던져 최후를 맞이한다. 아두를 품은 조운은 겹겹이 에워싼 포위망을 뚫고 나온다. 적벽대전 후 감부인도 병으로 죽자 형주를 치기위해 미인계를 쓴 주유가 손권의 막내 여동생을 유비에게 시집보낸다. 훗날 후주 유선이 제위를 계승하자 감부인을 소열황후(昭烈皇后)로 추서하고, 미부인도 황후로 추서한다.

 

역사상 유비에게는 확실히 감부인과 미부인이 있었다. 하지만 미부인의 ‘미(縻)’자는 『삼국지ㆍ미축전(縻竺傳)』을 근거로 할 때 ‘미(縻)’자로 바꾸어야 마땅하다. 또 나관중이 두 부인을 묘사함에 있어서도 많은 부분이 역사적 사실과 어긋난다.

 

『삼국지ㆍ감황후전(甘皇后傳)』에는 ‘선주의 감황후는 패현 사람이다. 선주가 예주로 와서 소패에 머물 때에 첩으로 맞아 들였다. 선주는 여러 명의 적실(嫡室)을 잃었는데, 그녀는 항상 집안 살림을 대신했다. 선주를 따라 형주에 와서 후주를 낳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로써 우리는 감부인이 본래 유비의 첩이었음을 알 수 있다. 어미는 아들로 인해 귀해지는 법이니, 후주 유선을 낳았기 때문에 『삼국지연의』에서는 그녀의 몸값을 높여 본처로 묘사했다. 이런 연유로 그 위치가 미부인의 앞에 놓이게 되었지만, 이는 당연히 역사적 진실성과는 거리가 멀다.

 

『삼국지ㆍ미축전』에는 ‘건안 원년, 선주가 원술을 막는 틈을 타, 여포가 하비를 습격하여 선주의 처자를 포로로 잡았다. 선주가 군대를 돌려 광릉의 해서(海西)로 오자, 미축이 누이동생을 바쳐 유비의 부인으로 삼았다.’는 기록이 보인다. 이로써 우리는 미부인이 미축의 여동생이며, 여포가 유비의 처자를 포로로 잡은 시점까지 미부인은 아직 유비에게 출가하지 않았고, 감부인도 유비의 첩이 된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이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여포가 잡은 유비의 처자란 당연히 미부인 보다 앞서 맞이한 다른 아내를 가리킨다는 사실도 파악할 수 있다.

 

『삼국지ㆍ감황후전』에서 이르기를, ‘선주는 여러 명의 적실을 여의고’라고 했다. 이는 전술한 두 부인에 앞서 또 다른 몇 명의 처자가 있었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그러나 이들 모두가 비교적 일찍 죽는 바람에 사서에는 그들의 성명조차 남아있지 않다.(『삼국지연의』에서도 그것을 생략했다.)

 

『삼국지ㆍ감황후전』에서는 다시, ‘조공의 군대가 이르러 당양의 장판파에서 추격하자, 곤궁한 처지에 빠진 선주는 황후와 후주(아두)를 버렸는데 다행히 조운이 보호하여 곤경을 면했다. 감황후가 죽자 남군(南郡)에 장사지냈다.’고 적고 있다. 여기서 주의할 것은 사적에는 장판파의 피난 과정에서 미부인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는 점이다. 이는 당양 장판파의 사건이 있기 전에 이미 미부인은 세상을 떠났으므로 『삼국지연의』에 적힌 내용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즉 조운이 아두를 품고 포위망을 뚫을 때 그들을 살리기 위해 우물로 투신자살한 게 아니었고, 당시 아두는 감부인의 곁에 있었던 것이다.

 

감부인을 남군에 장사지냈다는 기록으로 본다면, 감부인이 죽은 시기는 당연히 적벽대전 이후일 뿐만 아니라, 유비가 손권에게 남군을 빌린 건안 15년 이후(남군은 본래 오의 손권이 조조에게 탈취한 후 유비가 빌린 것이지, 나관중의 서술처럼 유비에게 공격당해 빼앗긴 것이 아니다.)가 된다. 그리고 이 일이 있기 전인 건안 14년에 이미 손권은 누이동생을 유비에게 들여보내 혼인을 시키고 우호관계를 굳게 맺은 상태였다. 그러니 나관중이 서술한 내용처럼 주유가 감부인이 병사했다는 소식을 탐지한 후에야 비로소 미인계로 유비를 억류하여 형주를 받아내려는 구상을 했던 건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황제가 된 유선이 생모였던 감씨에게는 소열황후를 추서했지만, 결코 미부인에게는 황후의 명호를 추서한 일이 없었다. 하지만 무에서 유를 창조한 나관중은 스스로 구상하고 있던 미부인의 형상에다 중요한 가필을 했다. 감부인과 미부인 두 사람에게 붓을 댄 양은 그다지 많지 않지만, 그녀들이 유비와 함께 환난을 겪는 줄거리는 독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고 있다.

 

『삼국지ㆍ감황후전』에서 제갈량이 감부인을 소열황후로 추서하라고 올린 표문 중에는 ‘어머니는 그 아들로 인해 귀하게 된다(母以子貴).’는 표현이 나온다. 나관중은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 부각과 과장을 통하여 감부인과 미부인의 지위나 역할을 높이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행위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역사적 진실과는 거리가 멀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제 31 계 미인계(美人計)

 

<한비자(韓非子): 내저설화(內儲說話)>: “진(晋) 헌공(献公)은 우(虞), 괵(虢), 두 나라를 치기 위해, 굴(屈) 지방의 명마(名馬)와, 수극(垂棘) 지방의 옥기(玉器), 그리고 젊고 아름다운 여자를 보내, 그나라 왕의 마음을 사로 잡으면서 그 나라 정치는 혼란스럽게 했다.” 여기서 의미하는 것은, “미인계”는 미인을 이용하여 적으로 하여금 편안하고 향락을 즐기도록 유혹하여 의지를 위축시킨 후, 기회를 봐서 승리를 취하는 계략이다.

 

*兵强者, 攻其將; 將智者, 伐其情. (병강자, 공기장; 장기자, 벌기정.)

 

세상 일은 변화가 심하니 마음을 써서“미인계”를 조심해야 한다. 미인은 그 자체는 겁낼 것이 없으나, 그 배후의 음모를 조심해야 하며, 한 때의 즐거움을 탐해서 심연으로 빠져서는 안 된다.

 

원 문

 

兵强者, 攻其將; 將智者, 伐其情. 將弱兵頹, 其勢自萎. 利用御寇, 順相保也. (병강자, 공기장; 장기자, 벌기정. 장약병퇴, 기세자위. 이용어구, 순상보야.)

 

번 역

 

만약 적의 병력이 강력하면, 그 장수를 공략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만약 적의 장수가 지모가 뛰어 나면, 그 의지를 좌절시켜야 한다. 적 장수의 투지가 쇠약해 지면 병졸들의 사기도 떨어 지게 되어 적군의 전투력도 거의

다 상실하게 된다. 적의 약점을 충분히 이용해 통제와 와해를 촉진하면 자기를 충분히 보호할 수 있게 되며 국면을 전환시킬 수 있게 된다.

 

해 설

 

이 계는 <육도: 문벌(六韜: 文伐)>에: “아첨하고 정치를 그르치게 하는 신하를 지원해 그 마음의 지혜를 혼미하게 하며, 미녀와 음탕한 것을 보내 그 정신을 혼란스럽게 한다 (養其亂臣以迷之, 進美女淫聲以惑之. 양기난신이미지, 진미녀음성이혹지.)”에서 나왔다.

 

<한비자(韓非子): 내저설화(內儲說話)>: “진(晋) 헌공(献公)은 우(虞), 괵(虢), 두 나라를 치기 위해, 굴(屈) 지방의 명마(名馬)와, 수극(垂棘) 지방의 옥기(玉器), 그리고 젊고 아름다운 여자를 보내, 그나라 왕의 마음을 사로 잡으면서 그 나라 정치는 혼란스럽게 했다. (晉献公伐虞, 虢, 乃遺之屈産之乘, 垂棘之璧, 女樂二八, 以榮其意而亂其政 진헌공벌우, 괵, 내유지굴산지승, 수극지벽, 여락이팔, 이영기의이난기정.) ”

 

이에서 보듯이, “미인계”는 미색을 이용해 적을 유혹하여, 적으로 하여금 무사안일과 향락을 탐하게 하고, 그 의지를 약하게 만든 후, 기회를 봐서 공격해 승리를 취하는 계책이다.

 

 

생활에서의 활용

 

<36계>와 군사-동탁의 죽음

 

전쟁에 있어서는 적의 마음을 공략하는 것이 중요하다. “미인계”를 사용하는 의도는 바로 적의 마음을 공략하는 것이며, 부드러운 것으로 강한 것을 이기고자 하는 도리이다. 아름다움을 좋아하는 마음은 모든 사람에게 공통이다. 그러나 사람이 일단 여색에 탐닉하게 되면 유약해 지고 무기력해져서 아무 것도 하지 못하게 된다.

 

한(漢) 헌제(獻帝)는 9 세에 제위에 올라, 조정은 동탁이 전권을 휘둘렀다. 동탁은 위인이 음험하고 사람을 함부러 죽일 뿐 아니라 제위를 찬탈할 야심을 품고 있었다. 문무 백관들은 동탁에 대해 모두들 미워하면서도 또한 그를 두려워했다.

 

사도(司徒) 왕윤(王允)은 조정에 저런 간적(奸賊)이 나타 났으니, 그를 제거하지 않으면 종묘사직이 위태롭다고 생각해 근심이 태산 같았다. 그러나 동탁의 세력이 강대해 그를 정면으로 공격해 봤자 그를 이겨 낼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동탁의 신변에는 여포라고 하는 무용이 뛰어 난 양자가 그를 충심으로 보호하고 있었다.

 

왕윤은, 이 “부자” 두 사람이 한 패가 되어 못 된 짓을 하며 안하무인이었지만, 모두 공통의 약점이 있었으니 바로 둘 다 여자를 밝힌다는 점을 꿰뚫어 보았다. 그러니 간적을 제거하기 위해, 그들이 서로가 서로를 죽이도록 “미인계”를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왕윤의 집에 초선(貂蟬)이라고 하는 가녀(歌女)가 있었다. 이 가녀는 미모와 재주를 다 갖추었을 뿐 아니라 대의를 아는 여인이었다. 왕윤은 초선에게 “미인계”로 동탁을 죽이려는 계획을 털어 놓았다. 초선은 왕윤이 자기에게 베푼 은덕에 감사해 자기를 희생시켜, 백성을 위해 간적을 제거하기로 결심하였다.

 

어느 연회가 있던 날, 왕윤은 자기의 “딸” 초선을 여포의 옆에 앉도록 준비하였다. 여포는 이 절세미인을 보고는 기뻐 어찌할 줄 몰라 왕윤에게 매우 고맙게 여기게 되었다. 두 사람은 길일을 택해 결혼하기로 서로 결정했다.

 

다음 날, 왕윤은 동탁을 집으로 초청해 연회를 베풀었는데, 초선에게 춤을 추도록 하였다. 동탁은 그녀를 보자 바로 군침이 돌았다. 왕윤은; “태사께서 마음에 드신다면 그녀를 태사에게 드리도록 하겠습니다.”라고 동탁에게 말했다. 간적은 짐짓 사양하는 척 하다가 초선을 데리고 즐겁게 집으로 돌아 갔다.

 

여포가 이 사실을 알고는 크게 화가 나 왕윤에게 따지고 들었다. 왕윤은 그러나 교묘한 말로 여포를 속였다. 그는, “태사께서 그 며느리를 보자고 하시는데 누가 감히 그 영을 거역할 수 있겠습니까? 태사께서는 오늘이 길일이니 그녀를 데리고 돌아 가 장군과 결혼을 시키겠다고 하셨습니다.”라고 둘러 대었다.

 

여포는 사실인 줄로 믿고는 동탁이 그를 위해 결혼식을 치루어 주기를 기다렸다. 며칠이 지나도 아무런 동정이 없어, 다시 알아 보니, 동탁이 이미 초선을 자기 첩으로 만들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포는 일순간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어느 날 동탁이 조정에 들어 와서 보니 늘 뒤에 따라 다니던 여포가 보이지 않자 의심이 들어 바로 집으로 돌아 가 보았다. 후원에 있는 봉의정에서, 여포는 초선과 서로 껴안고 있는 것이었다. 화가 난 동탁은 창을 들고 여포를 찔렀다. 여포가 한 손으로 창을 막아 찌르지는 못하였다. 여포는 화가 머리 끝까지 나서 동탁의 집을 떠나 갔다. 원래, 여포는 초선과 몰래 약속하였고, 초선은 왕윤의 계책에 따라 그들 부자 사이를 이간질 하기 위해 여포가 사랑하는 사람을 빼앗아 간 동탁을 크게 욕하였다.

 

왕윤은 시기가 무르익었다고 보아, 여포를 밀실로 불러 상의하였다. 왕윤은 동탁이 자기 딸을 강제로 데려 간 것에 대해 크게 비난하면서 또한 장군의 처를 빼앗은 것에 대해서도 크게 분노하였다. 여포는 이를 갈며 말하였다: “우리가 부자 사이가 아니라면, 정말 그를 죽이고 싶소.” 왕윤이 얼른 말을 받았다: “장군, 그렇지 않습니다. 장군은 성이 여씨이고 그는 동씨입니다. 그러니 무슨 부자 사이란 말입니까? 게다가, 그는 장군의 처를 빼았았고 창으로 장군을 찔러 죽이려 까지 했는데 무슨 부자의 정이 있단 말입니까?” 그러자 여포는, “사도께서 잘 일깨워 주시었소. 그 간적을 죽이지 않으면 내 인간이 아니오.”라고 내어 뱉었다.

 

왕윤은 여포의 결심이 굳게 선 것을 보고는, 거짓 성지를 만들어 동탁이 조정에 들어 와 성지를 받도록 했다. 동탁은 한껒 거들먹거리며 입조하였다. 그러나 여포가 갑자기 그를 창으로 찔러 그의 목을 꿰뚫고 말았다. 동탁이 죽자 조정내외 대신들이 모두 박수를 치며 쾌재를 불렀다.

 

 

<36계>와 비즈니스-“영웅”이 “미인”을 구하다

“미인계”는 현대 비즈니스 경쟁 중에도 여러 가지 형태로 발전해 왔다.

아름다움을 좋아하는 마음은 누구에게나 다 있는 법이다. 남성의 강건한 아름다움, 여성의 은근한 부드러움의 아름다움, 그리고 여러 문화 예술의 아름다움 등이 모두 비즈니스를 위해 사용된다.

 

상인들의 지혜는 끝이 없다. 상품을 판촉하기 위해서는 어떤 방법이라도 생각해 낸다.

 

가게의 앞 유리로 된 작은 방 안에 미인이 한 명 들어 있는데 가게 앞을 지나 가는 행인들에게 큰 소리로 외치는 것이었다: “도와 주세요! 제발 저를 이 곳에서 구해 주세요,,,”

 

이 아름다운 여인의 목소리는 솔직하고 시원스러우면서, 일말의 있는 듯 없는 듯한 사랑의 원망을 담고 있는 듯해서, 그 목소리는 들으면 들을수록 몹시 감동적이고 매혹적이었다. 그래서 지나 가던 사람들이 모두들 둘러 싸서 도대체 무슨 일인가 하고 몰려 들었다. 그리고는 그들은 마치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 속에서 나온 듯한 아름다운 소녀가 좁은 유리 방안에 갇힌 것을 보게 되었다. 얼마 안 되어 몰려 든 사람들이 점점 더 늘어 나게 되어 유리 방 주위 사방이 사람들로 꽉 차게 되었다.

 

유리 속의 미인은 호기심으로 가득 찬 군중들을 향해, 그녀 옆에 가득 쌓아 놓은 새로 나온 “스포츠맨” 담배를 가리키며 말하기 시작했다: “여기 이 담배들을 다 팔지 않으면 저는 여기서 나갈 수가 없습니다. 저를 좀 도와 주시겠습니까?” 목소리는 청아해 듣기 좋았고 표정 또한 감동적이고 사랑스러웠다. 그녀는 불과 몇 마디 말하지 않았지만 그녀의 형편을 이미 충분히 납득시켰기 때문에 더욱 더 많은 사람들의 동정을 사게 되었다. 모인 사람들은 그녀에 대한 가련하고도 사랑스러운 마음이 저절로 일어 나게 되어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돈을 꺼내 그녀로부터 담배를 사게 되었다.

 

이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판촉 방법은 몇 년 전 카나다의 모 담배회사가 신상품 “스포츠맨” 담배를 판촉하기 위해 어느 도시에서 실시한 광고 선전 방법이었다.

 

결과는 어떠했을까? 결과는 100 만 갑의 담배가 130 시간 안에 다 팔려 나갔다. 사람들이 놀랄 만한 결과였을 뿐 아니라 가장 좋은 광고 효과를 가져 왔다. 신제품은 시장에 나오자 마자 큰 관심을 끌게 되어, 역사가 오래 된 제품보다도 지명도가 오히려 높아 졌고, 누구나 다 아는 인기 상품이 되었다.

 

<36계>와 처세-KGB의 “미남계”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 “하늘에서 그냥 떨어지는 빵은 없다”와 같이 사랑도 마찬 가지다. 즉, 거저 다가 오는 “애정운”의 배후에는 왕왕 말할 수 없는 목적이 있게 마련이다.

 

1973 년 봄의 어느 저녁 무렵, 독일 연방 군수부의 기밀담당 비서인 호은스카야는 일을 마치고 핸드백을 들고서 느린 걸음으로 자기의 혼자 사는 아파트로 돌아 가고 있었다. 이 얼굴이 못생긴 36 살의 노처녀는 여태까지 어느 남자도 그녀에게 관심을 나타내 보인 적이 없었다.

 

그녀가 그린턴스 거리에 도착했을 때, 말쑥하게 옷을 차려 입은 한 남자가, 손에는 신문을 들고 사방을 두리번 거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녀가 그의 옆을 지나 갈 때, 그 남자가 아주 예의바르게 이 거리에 “레드티 아파트”가 있는지를 물어 왔다. 그녀는 이 곳에 십 수 년을 살아 왔고 매일 이 거리를 지나 출근하지만 “레드티 아파트”에 대해서는 들어 본 적이 없었다.

 

“아유, 속았군요!” 남자는 깜짝 놀라며 말했다. 그의 손에는 신문에서 오려 낸 결혼 광고란이 있었다: “여. 방년 28 세. 용모수려. 성실하고 마음이 넓은 남자를 배우자로 원함. 관심있으면, 보은 남구 그린턴스 가 레드티 아파트 502 호로 연락 바람.”

 

호은스카야는 그 불행한 남자에게 무척 동정이 가, 한 참 동안 이 곳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남자는 그녀가 무척 고마워서 머뭇 머뭇거리며 조심스럽게 그녀에게 커피를 한 잔 하자고 제의하였다.

 

그녀는 기꺼이 응했다. 이때부터 둘은 서로 알게 되었다. 그는 언제나 태도가 온화하고 거동이 우아했으며, 은근히 정이 많은 사람이었다.

 

마침내 어느 날, 두 사람은 서로 포옹하게 되었는데 호은스카야의 감은 두 눈에서 두 줄기 눈물이 흘러 내렸다, 36 년의 세월, 처음으로,,,

 

반 달 후 둘은 결혼하였다. KGB 본부의 파일 캐비넷에는 다음과 같은 파일이 있었다: 게리 호은스카야. 여, 미혼, 지지 정당 무. 서독 군수부 기밀담당 비서, 주소; 보은 남구 그린턴스가 8 동, 406호,,,

 

그 파일은 상세하게도 호은스카야의 지난 36 년을 재현하고 있을 뿐 아니라, 그녀의 심리 특징에 대해 철저하게 분석하고 있었다: “심리상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전형적인 고독한 노처녀, 그러나 특별하게 일상에서 벗어 난 행위는 없음. 얼굴이 그다지 잘 생기지 않음, 오히려 추녀에 속하며 이성의 주의를 끌지 못함. 애정 생활이 순조롭지 못하거나 아예 전혀 그런 일이 없는 상황. 그러나 이렇게 자기 용모에 대해 자신이 없는 노처녀의 마음 속에는 통상 용암과도 같은 뜨거운 감정이 꿈틀거리고 있음. 일단 넘쳐 흐르기 시작하면 막을 수 없음. 핵심은 어떻게 이 용암을 흘러 넘치도록 유도하여 그것을 사로 잡느냐 하는 것임,,,”

 

결혼 후 호은스카야의 파일은 계속 더 두꺼워져 갔다.

 

‘의심할 바 없이 그녀의 감정의 문은 이미 나에 의해 열려졌음. 그 스위치는 이미 나의 손으로 장악하고 있음,,,”

 

“예정된 계획에 따라, 제 일 단계는 반드시 최대한도로 그녀의 오랫동안 감추어진 감정을 촉발시켜, 그녀로 하여금 사랑의 달콤함을 맛보도록 해 점점 더 깊이 빠져 들게 해야 함. 이것은 이미 완성된 것으로 보임. 현재는 저 흘러 넘치는 감정을 다소 조정해서 내가 지정하는 방향으로 흘러 가도록 해야 함,,,”

 

하리사는 바로 호은스카야가 그린턴스 거리에서 만나게 된 그 온순하고, 선량하며 자상한 남자로서 후에 그녀의 남편이 된 사람이었다.

 

오래지 않아, 정이 많은 그 남편이 말하기 어려운 비밀을 털어 놓았다: 그의 부친이 죽기 전 빚을 남기고 죽었는데, 최근에 와서 채권자들이 아버지를 대신해 빚을 갚으라고 요구한다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그를 잘게 썰어 죽인다고 협박한다는 것이었다. 과연, 2 주일 후 한 통의 살기등등한 익명의 편지가 신혼부부 앞으로 배달되었다.

 

남편은 절망적으로 놀라서 어쩔 줄을 모르는 신부를 껴안았다. 그리고 두 사람은 종말이 온 듯이 머리를 부등켜 안고 크게 울었다.

 

채권자가 보내 온 내용은, 그 엄청나게 큰 액수의 빚을 실물로 갚아도 좋다는 것이었다. 그녀 사무실의 자료도 좋다는 것이었다.

 

사리에 밝은 남편은 그렇게 하는 것에 절대 동의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밤이 깊어 인적도 조용해 지자 호은스카야는 남편의 견실한 가슴을 어루 만지며 가슴이 크게 뛰는 것을 느꼈다. 온순하고 부드럽고, 자상하고, 열정적이며 그렇게 좋은 남편에 비해서 자기는 얼마나 초라한가: 젊은 나이도 아니고 생기기도 못 생기고.

 

그녀의 가냘픈 방어선이 마침내 무너졌다. 일 주일 후의 주말, 그녀는 마침내 사무실에서 국방군 후방지원 공급계통에 관한 기밀자료를 복사해 들고 나왔다. 이때부터, 독일 연방 군수부 내의 기밀, 절대적인 기밀정보가 KGB 본부로 계속해서 흘러 들어 갔다.

 

모두 12 년 동안, 아무도 주의하지 않던 그 여간첩의 기밀문서 절도 건은, 이후 KGB 상층부의 사람이 넘어 옴으로 해서 서방 첩보기관에 알려지게 되었고 사람들에게도 이 흔하지 않은 비밀이 알려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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