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2009년 1월 18일
산행코스 ; 윗갈치-비룡산-금강산-장군산 - 물래산 - 팔봉중학교-통신탑-북청-오석산-130봉지나콘크리트도로-옥리속말
산행거리 ;17.5km
산행시간 ; 7시간10분
금북정맥 15구간 출발지점에 내리자 마자 철새들이 하늘을 날아 가고 있다..우리를 환영해주는 것일까?
서녕정 활터인가?
인애 덕행....표지석이 멋지다...뒤에는 서산시 사격장이다..
정맥과 지맥의 합류점 대산지맥..
집뿌리재의 느티나무..
천년 만년 이곳에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하나였던 바위가 여러조각으로 나뉘어졌다....
바위틈에 끼어서 살아가고 있는 벚나무...
금강산 정상에 웬 냄비....두둘겨 봤다...
이곳 정맥길은 지맥과 맞닿은 곳이 많이 있다..
무단 횡단을 하고..무단횡단하다 교통사고라도 당하면 개값이라던데....우리는 무사히 다 넘어왔다....
묘터가 아주 좋아 보인다....
굴포운하지(堀捕運河址)
우리나라 운하사상 가장 오래된 것으로 판명되는 굴포운하는 천수만으로 유입하는 흥인천과 가로림만과의 약 3km에 달하는 지역을 착통하는 운하를 말한다.
굴포운하를 개착하게 된 요인은 삼남지방의 세곡미를 서울로 조운함에 있어 조운선단이 태안반도의 안흥량 관장항을 반드시 통과해야만 했다. 그러나 안흥량은 서해안상에 돌출한 장봉으로 해중에 암초가 있고, 또한 급격한 조류로 인해 빈번히 조운선이 전복되고 파선으로 인하여 국가적인 재정손실이 컸다. 그리하여 세곡미의 안전수송과 조운에 따른 지리적, 시간적 거리를 단축시키려고 지금의 굴포운하 개착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고려 인종 때(1123~1146)부터 굴포를 개착하여 조선중기 임진왜란 직전까지 비록 단속적이기는 하였지만 실로 400여년간 수천명의 인부를 동원하여 운하공사를 계속하였으나 개착지의 지질이 화강암층이라 당시의 기술로는 암석을 뚫지 못한 사회적 사정과 높은 간조의 차를 극복하지 못한 자연적인 요인으로 말미암아 성공치 못하였다.
그러나 국가의 재원이 세곡미라는 당시의 사회적 사정으로 말미암아 조선 현종때에는 굴포개착지 주변에 많은 조창(漕倉)들을 설치하여 조운의 편의를 도모하였으나 조운행정에서 야기된 문제들로 인해 폐창하고 말았다. 비록 설창육운안(設倉陸運案)의 실행은 실패로 끝났지만 조세창고지와의 관련으로 인해 천수만과 가로림만의 해로를 따라 많은 창촌락이 발생, 발달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펌]
이것이 뭐꼬? 파래인가? 김인가?
오늘의 마지막산인 오석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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