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방

금북 6구간 종주

한림정(신방현) 2008. 9. 8. 15:03

 23개의 봉우리를 넘나든 힘든 금북 6구간 종주

 

언제 : 2008.9.7(일) 날씨 : 맑음 기온 : 섭씨 18~30도

산행거리 : 17km 산행시간 : 8시간 15분 동행 : 귀연산꾼 19명


<산행 경로>

차령고개

07 : 52

곡두고개

13 : 05

봉수산

08 : 20

646봉

14 : 05

인제원고개(골프장)

08 : 29

갈재고개

14 : 49

420.9봉

11 : 14

헬기장(480m)

15 : 15

점심식사

11 : 30

각흘고개(213m)

16 : 07


<그 길의 끝에 희망이 있다>


우리 인생의 길에는

비바람도 있고 어두운 길도 있다.

그래도 우리는 계속 그 길을 따라간다.

끝까지 가보지 못한 사람은 결코 느끼지 못할

그 무언가가 길 끝에 있음을 알기에...

그 길의 끝에는 사람 냄새가 나는 희망이 있다.

그걸 보려고 우리는 쉼 없이 걸어가고 때론 달려본다.

그리고 드디어 그 길의 끝에 다다랐을 때,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여유롭게 즐긴다.


- 윤방부의《건강한 인생, 성공한 인생》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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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찾은 금북정맥 차령고개>


 진달래와 철쭉 그리고 아카시아 향기를 맡으며 산하를 누볐던 지난봄의 향연이 엊그제 같은데 계절은 가을의 문턱을 서성인다. 잘 익은 과일과 논두렁 누런 벼이삭은 결실의 계절임을 느끼게 한다. 세상은 하도 어수선하고 시끄러워 무질서했지만 베이징의 신나는 메달 소식은 한여름을 보내는데 시간이 부족했다.

 다시 찾아온 IMF의 망령이 매스컴에 오르내리고 온통 경제가 어렵다고 난리를 치는데 미국에서는 새파란 부통령 후보의 출현에 난리가 법석이다. 오바마에 필적할 만한 가공할 위력을 뽐내는 젊은 여성의 출현은 폭발적이다. 전당대회를 통하여 보여주는 미국 사회의 적나라한 선거 모습에 군더더기 투성이인 한국 정치사의 구린 뒷맛이 씁쓸하다.

 차령 고개 리조트에서의 화려한 뒤풀이가 생각나고 3년인가 5년이 묵은 김치를 맛있게 먹고 근사한 정원에서 차 마시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정안 밤을 소개하는 광고판이 띄엄띄엄 공주를 알리는데 뿌연 안개가 가득 낀 아침 산하는 고요와 싱그러움이 한껏 묻어 있어 고즈넉하다.

 리조트 뒤편으로 타고 오르는 정맥은 숱한 봉우리의 연속이다. 가끔 임도와 만나지만 유난히도 오르막과 내리막이 많은 것이 지도에도 나타나 있다.

 봉수산을 넘어 인제원 고개 골프장을 지나는데 일행들이 등로를 놓친다. 남쪽으로 난 능선을 따라 가면서 완전히 산행의 흐름을 놓친 것이다. 이른 알바로 청계님과 사철나무가 어려운 고생을 했다.

 인제원 고개에서 바라보는 골프장은 국도와 고속도로가 어울려 있는 명품 골프장처럼 인상적이었다. 정안 골프장은 아침 여명에 어설피 낀 안개와 파란 잔디의 조화는 나지막이 뻗어난 산줄기 따라 근사하다.

 우리 산하의 산지 개발이 엉망인데 개인적으로 골프장이나 과수원 개발 같은 계획이 지자체별로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무작정 버려진 산지와 무분별하게 밀식된 산림 자원을 보며 너무도 아깝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무언가 경제성 있는 산지의 개발과 국토 이용에 대하여 새로운 구상이나 실천이 따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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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령고개에서 리조트를 지나 산행을 시작하는 산꾼들>

 

<차령 고개>


천안시 광덕면과 공주시 정안면을 이어주는 차령고개는 조선시대 9개의 대로(大路) 가운데 특히 서관대로(의주로), 북관대로(북로), 영남대로와 함께 4대 큰 길로 꼽던 삼남대로의 대표적인 고갯길이다. 차령고개를 넘어선 삼남대로는 신탄진, 대전 방향과는 전혀 다른 공주, 강경 방면으로 대로를 열어놓게 된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천안군 편에는 고을 남쪽 40리에 쌍령고개가 있고, 남쪽 45리에 차현이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같은 책 공주목 편에는 차현은 북쪽 57리, 쌍령 봉수는 북쪽 50리라고 적혀 있다.

 한양을 떠난 전라도 길이 차령을 넘으면 바로 광정역(廣程驛)에 닿았다는 기록이 있는데 충청도 공주에서 관할하던 큰 창고가 있었기 때문이다. 광정창은 지금의 공주시 정안면 소재지 광정리다.

‘조선왕조실록’에도 광정이 자주 등장하는데, 특히 이괄(李适)의 난(1624)을 피해 공주로 몽진하던 인조를 전라도 관찰사 이명(李溟)이 군사 2천 명을 거느리고 이곳에서 맞아 공주까지 호위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서 차령고개는 금북정맥을 넘어가는 매우 중요한 고개였다. 쓸쓸함이 남아 있지만 역사적으로 큰 의미를 지니고 있는 차령고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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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조트 뒤편 정맥 들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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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조트 뒤편에 있는 평화통일 기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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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맞이 표지석과 망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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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수산 근처에서 본 산줄기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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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제원 고개 조망터에서 본 정안 골프장과 고속도로>

 

<인제원 고개>


 인제원 고개에서 보이는 정안 골프장과 고속도로의 풍경이 아름답다. 천안-논산간 고속도로의 차령터널 위쪽이 인제원 고개인데 인제원(仁濟院)은 대동여지도에도 표기가 있는데 조선시대의 숙박시설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고 옛날에는 쌍령 고개로 불리던 곳이다.

 차령고개가 수레가 다니던 길이라면 사람이 걸어 다니던 길은 쌍령인데, 차령 이남 사람들의 과거 길을 비롯한 모든 민중들의 발품이 다 이 길로 오갔다고 한다. 이곳에는 조선 시대에 한양으로 가는 조세를 털어 빈민을 구제했다는 의적 안수(安壽) 이야기도 남아 있다. 고갯길 중턱에는 지금도 그의 '장수 발자국'이 남아 있다고 한다.

  공주에서 천안을 거쳐 한양으로 가는 길은 차령과 쌍령이 있었는데 차령고개가 조세를 실은 수레를 비롯한 높은 사람들이 이용했다면 쌍령 고개는 서민들이 이용했던 고개이다. 인제원 고개와 쌍령이 고개로 연결되는 두 고갯길을 넘어 숱한 민중들이 한양 길로 걸어 오가던 길을 옛날에는 쌍령 고개라고 불렀다.

 예나 지금이나 큰길일수록 종종 그런 우회로나 지름길을 만들기 마련이다. 문경 새재에는 이화령이 있었고, 추풍령에는 괘방령이 있었다. 큰길이란 게 으레 나랏 길이고 보면 높은 양반들의 '물렀거라'를 만나기 일쑤고, 공연히 안 날 턱이 없는 먼지를 터는 역졸들도 꽤나 귀찮았을 터이다.

 조상들의 해학과 풍습이 스며든 인제원 고개는 예전 모습은 많이 살아졌지만 국도와 고속도로의 자남으로 그 명성은 역시 살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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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0.9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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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두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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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6봉을 오른 후 휴식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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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재고개>

 

<무더운 늦여름 정맥 종주는 무리였나!>


 장고개와 개치고개를 넘어 곡두고개에 이르는 산길은 지독한 봉우리의 연속이다. 아마도 정맥 산행을 실시한 중에서 가장 많은 봉우리를 지난 것 같다.

 400~500m을 오르내리는 지루한 산봉우리 오름은 무더위와 바람 한 점 없는 푹푹 찌는 더위로 인하여 발길이 더디다. 한 고개 넘으면 쉬고 또 한 고개 넘으면 물을 마시는 힘든 레이스이다.

 모두들 준비한 식수가 바닥나고 간식으로 준비한 과일도 동날 지경이다. 그래도 점심을 먹은 뒤로는 약간의 골바람이라도 불어 다행이었지만 오늘 최고봉인 646봉을 오르기는 정말 힘들었다.

 곡두고개에 다다른 일행 중 많은 수가 646봉을 보며 산행을 포기한다. 장벽처럼 앞길을 가로 막는 큰 봉우리의 출현에 더위와 피로에 지친 일부가 기진한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다행히 버스와 연락이 되어 중도 탈출을 시도하고 646봉을 오른다. 더위와 피로 그리고 밀려오는 가쁜 호흡은 해발 고도 200m를 오르는데 사력을 다하게 한다.

 처음 참가한 4분은 그래도 잘 뭉쳐 봉우리를 오른다. 허벅지에 경련이 이는 분이 있어 진통제를 복용하고 스틱을 빌려 주니 잘 견디며 앞으로 나아간다.

 600미터급 세 봉우리를 지나니 갈재고개가 나타난다. 갈재고개에서는 광덕산 가는 길이 잘 나 있다. 약간 착가하면 광덕산 쪽으로 가기 싶다. 이곳은 충청남도 공주시와 천안시 그리고 아산시가 경계를 이루는 곳이다. 광덕면과 송악면 그리고 유구읍이 한 무리를 이루는데 공주의 밤, 유구 쪽의 배나무, 그리고 천안 쪽의 호두나무가 눈에 띈다.

 송림 우거진 오솔길을 1시간여 걸으니 39번 도로가 보인다. 각흘고개라는 팻말과 주유소가 있고, 우리의 베이스캠프가 보인다.

 각흘고개라는 이름은 고개의 아래에 있는 아산시 송악면 거산리 성골마을이 와우형으로 소가 누워있는 형상인데 각흘고개가 소가 누운 형상 중에서 뿔이 있는 부분이라 하여 각흘(角屹)이라 한다고 한다.

 하지만 고갯마루에 있는 금계령이라 붙여진 주유소 주인은 이 고개가 금계산 줄기이기 때문에 금계령이라고 말한다. 각흘고개라 기록된 모든 지도가 잘못이라는데 충청남도청 자료실이나 관계자들에게 지명의 유래에 대해서 더 알아보아야 하겠다.

 중간에 탈출한 회원들은 곡두고개에서 빠져 흐르는 계곡 수에서 몸도 씻고 시원한 모습으로 뒤풀이에 참여하고 있었다.

 특히 공주 정안 밤 막걸리로 산행 피로를 푸는데 노란 색깔에 구수한 맛이 특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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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가꾸어진 묘지에서 바라본 산줄기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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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흘고개 표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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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흘고개 또는 금계령>

 

 

 무려 23개의 봉우리를 지난 금북 6구간 산행이 몹시도 힘들었다. 역시 9월은 아직 여름임이 분명하다. 더군다나 한반도의 기후 변화로 여름은 더없이 길어지는가 보다.

 하지만 뜨거운 태양과 높은 하늘은 곡식을 여물게 하고 과일의 당도를 높이며 공기를 맑게 한다. 천고마비 계절은 중국에서 흉노가 쳐들어온다는 주의보라 했다지만 정맥 길에 쏟아지는 가을 햇살은 또 하나 의미 있는 발걸음의 시작임이 분명하다.    

 각흘고개를 지나 공주로 향하는 길목에서 유구를 지난다. 편직물업이 발달했던 유구는 한국전쟁 후 북한 피난민이 많이 살던 고장이다.

 유구읍(維鳩邑)은 임진왜란 때 명나라 장수 이여송이 이 땅에 진군했다가 유구의 지세가 큰 나라도 위협할 장군출생 형임을 알고 이를 막기 위해 유구리 뒷산을 끊었는데 이때 땅속에서 세 마리의 금빛 비둘기가 피를 흘리며 날아갔다고 한다. 이후 전염병이 퍼져 수많은 군졸들이 죽어나가므로 인근 고승을 찾아가 치유방법을 묻자 이곳 지명을 오직 유(), 비둘기 구()를 써서 유구라 고쳐 부르라 해서 시키는 대로 했더니 모두 말끔히 나았다고 하는 지명의 유래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다음 차동고개로 향하는 산줄기를 바라보며 아직 햇빛이 환한 귀가 길에서 밀려오는 잠에 스르르 눈이 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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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종주한 산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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